인권위, 1554명 설문ㆍ대면 조사
성폭력 겪은 비율도 10% 육박
운동선수로 활동 중인 지적장애인 A씨는 수년 간 크고 작은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어릴 적에는 지시나 훈련 속도를 잘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박과 신체 폭력을 당했고, 최근엔 체형에 대한 동료들의 놀림 등 언어 폭력이 지속되고 있다. A씨는 선수 생활을 잠시 그만 두거나 종목을 바꾸기까지 했지만 주변의 폭력은 여전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에서 A씨는 “신고기관을 모르기도 하지만 알았다 해도 불이익이 걱정돼 신고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장애인 선수 10명 중 2명은 A씨처럼 폭력 및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제추행과 성희롱 등을 당한 비율도 10%에 육박했다.
13일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에 따르면 인권위가 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지난해 9월부터 한 달 간 장애인 선수 1,554명을 대상으로 설문ㆍ대면조사를 실시한 결과 22.2%(354명)가 폭력 및 학대를 겪었다고 답했다.
유형 별로는 협박이나 욕, 모욕적인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응답(중복 가능)이 13.0%로 가장 많았다. 신체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훈련 강요(10.4%), 기합이나 얼차려(8.8%), 구타(6.9%), 놀림이나 집단 따돌림(6.6%) 등이 뒤를 이었다.
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345명 중 51.5%는 가해자를 감독ㆍ코치로 지목했다. 이어 선배(31.8%), 동료ㆍ후배(20.8%), 코칭스태프(6.8%) 순이었다. 폭력은 훈련장(59.4%) 경기장(30.7%) 합숙소(13.3%) 등에서 자행됐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선수는 전체 응답자의 9.1%인 142명이었다. 피해 유형은 언어적 성희롱(6.1%), 시각적 성희롱(6.0%), 강제추행과 강간을 포함한 육체적 성희롱(5.7%), 디지털 성폭력(0.8%) 등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선수들 대부분 성폭력에 대응하지 못했다. 이유로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39.4%)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해서’(18.2%) ‘당시엔 성폭력인지 몰라서’(18.2%) 등을 들었다. 장애인 선수 B씨는 대면조사에서 “코치와 사이가 나빠지면 선수로서의 삶이 어렵게 될지 몰라 허락 없이 머리나 어깨 등을 만져도 신고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여성정책연구원은 폭력 예방을 위해 △지도자의 장애 감수성 및 인권 교육 의무화 △장애인체육회 내 인권상담 인력 보강 및 조사 절차의 독립성 강화 등을 제안했다. 인권위는 “전문가 및 관계 기관과 협의를 거쳐 정책개선 대안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감사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익감사 청구로 진행한 ‘국가대표 및 선수촌 등 운영ㆍ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체육계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관리 문제, 문체부의 대한체육회 등에 대한 지도ㆍ감독 적정성 점검에서 40건의 위법ㆍ부당 사항이 확인됐다. 한국 쇼트트랙의 대표 주자인 심석희 선수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코치의 지속적 폭행을 폭로한 이후에도 체육계의 비리 조사와 처리는 여전히 부실하다는 의미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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