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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인턴 눈으로 본 기자와 ‘기레기’의 차이

입력
2020.02.19 01:00
수정
2020.02.19 01:2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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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청문회] <11> 진정한 저널리스트

영화 <더 포스트> 캡처. 워싱턴 포스트가 베트남 전쟁의 허상을 담은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한 뒤 정치권과 주주들의 압력을 이겨내고 보도한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더 포스트> 캡처. 워싱턴 포스트가 베트남 전쟁의 허상을 담은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한 뒤 정치권과 주주들의 압력을 이겨내고 보도한 과정을 담고 있다.

때때로 기사 한 줄은 글 이상의 힘을 갖습니다. 기사 하나로 세상이 바뀌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언론의 힘은 단순히 ‘강력하다’는 묘사로 그치지 않습니다. 언론인 스스로가 힘을 남용하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에 흔들리지 않아야 비로소 ‘언론답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 같은 특별한 영향력 때문입니다.

미국 영화 <더 포스트>가 다룬 펜타곤 페이퍼 고발 사건도 그랬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베트남 전쟁의 허상을 담은 정부의 비밀문서를 입수했지만 기사를 쓰지 말라는 정치권의 압박이 이어집니다.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 역)은 깊은 고민에 빠지지만 법적ㆍ경제적 위험을 무릅쓰고 기사화를 결정합니다. 온갖 압력을 이겨내고 추악한 정부의 속살을 드러낸 영화 속 기자들은 언론인의 사명감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기레기’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한국 언론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언론인을 꿈꾸는 밀레니얼 세대의 눈에 언론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진정한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 영화와는 다른 한국 언론의 현실

누헨지니=영화 <더 포스트> 속 기자들을 보면서 공감이 가면서도 낯설게 느껴졌어. 정치 권력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사명감을 갖고 보도하는 모습을 보면, 언론인들이 갖고 있는 자부심이 떠올라. 하지만 타사와의 협력을 더 중시하는 영화 속 장면들은 낯설게 느껴져. 기자들 대부분은 타사를 제치고 특종하는 일에 더 매달리고 있을 것 같거든.

배부른 소크라테스(이하 배테)=<더 포스트>는 언론의 사명감을 잘 담았다고 생각해. 언론사 사주인 캐서린(메릴 스트립 역)이 정부와 기업의 눈치를 보는 장면은 언론사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 있어. 영화 초반 캐서린은 사건을 보도하지 말라며 기자들을 압박하기도 해. 그러나 진실을 향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뭉친 취재기자들을 보며 마음을 바꾸잖아. 캐서린이 외압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언론의 이상향을 보여준다고 느꼈어. 그러나 한편으론 의문도 들었어. 현실 속 기자들도 굵직한 사건을 보도할 때 항상 이런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걸까.

도쎄=‘조국 사태’를 지켜보면서 사명감보단 조회수를 의식하는 보도행태가 느껴졌어. 기사 꼭지가 엄청나게 많았거든.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과도한 취재 경쟁으로 다른 이슈들이 묻히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자들이 도덕적 사명감에 따라 기사를 쓴 건지, 특종 터뜨리기 경쟁에 매몰됐는지 알 수가 없었어.

배테=기자라면 사명감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기자를 꿈꾸게 된 계기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던 한 언론인의 이야기였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터지면 그걸 피해야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직업이다.” 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세상에 전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기자의 사명감이 느껴졌거든. 그런데 실제 언론사에서는 사명감이나 현장이 최우선은 아닌 것 같아. 직접 취재를 하지 않고 이슈가 되는 내용을 짜깁기해서 조회수를 올리는 어뷰징 기사에 집중한 매체들도 정말 많아. 이런 걸 보면 언론에 대해 갖고 있던 환상이 확 깨져버려.

날아라 펭수(이하 날펭)=세월호 사건으로 사명감보다는 특종과 조회수를 우선하는 일부 언론의 관행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 같아. 살아남은 학생들이나 실종자 가족들에게 기자들이 던진 잔인한 질문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그런 질문을 기자들은 일상적으로 하는 것 같아. 그때 깨달았어. 어쩌면 시민들이 ‘기레기’라고 비판하는 지점이 기자들의 속성과 닿아 있을 수도 있다고.

[저작권한국일보] 영화 <더 포스트> 주요 장면. 박구원 기자
[저작권한국일보] 영화 <더 포스트> 주요 장면. 박구원 기자

◇ 온라인 트래픽 경쟁 면죄부 될 수 있나

숭례문 뽀글이(이하 뽀글이)=언론 환경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좋지 않은 기사란 걸 알면서도 쓰게 되는 구조적 이유도 있잖아.

누헨지니=온라인 매체 급증이 큰 원인이라고 봐. 신문만 있던 시절에는 한 매체가 갖는 권위도 상당했고, 생산자가 양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뉴스만 유통해도 문제가 없었잖아. 그런데 온라인 매체들이 생겨나면서 이제는 ‘조회수’, ‘트래픽’이라는 새로운 전쟁터가 등장했잖아. 그런 환경에서 24시간 내내 이슈에 대응해야 하니까 질 낮은 기사에 대한 비판 의식도 느슨해졌다고 봐.

날펭=사실 기성 언론의 가장 큰 강점은 깊이 있는 취재로 만들어낸 양질의 기사였잖아. 지금도 대형 언론사들은 취재에 필요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상대적으로 잘 갖추고 있잖아.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보도들도 여전히 많이 나오고 있지. 다매체 시대엔 오히려 이렇게 깊이 있는 기사들이 경쟁력이 높을 텐데, 모든 기성 언론사가 이런 확신을 갖고 있진 않은 것 같아. 이름이 꽤나 알려진 언론사에서도 어뷰징 전용팀을 꾸려서 쉴새 없이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걸 봤어. 언론문화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매체들이 오히려 수익논리에 끌려가는 모습을 볼 때면 씁쓸해.

도쎄=기자들도 회사라는 조직의 구성원이잖아. 위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으라고 압박하거나 단독 기사를 요구하면 ‘저질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불주먹=온라인 대응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당장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잖아. 그리고 바뀐 환경에서 디지털을 포기하라는 건 현실성도 없어. 다만 중요한 건, 조회수 경쟁에 매몰돼 수준 이하의 기사를 생산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는 거야. 이슈에 대응한답시고 기본적인 사실 확인이나 입체적 고민 없이 기사를 내보냈을 때,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우린 이미 여러 번 목격했잖아.

배테=트래픽과 수익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이겠지. 그건 언론환경이 아무리 안 좋아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야.

날펭=우리는 기자 지망생이고, 또 지금은 언론사 내부에 잠시 속해 있는 인턴이니까 ‘기레기’가 아닌 훌륭한 기자들의 존재를 알고 있어. 본받을 만한 기자들을 보게 되면, 조직문화나 언론환경을 탓하며 저널리즘 원칙을 벗어나는 것은 핑계로 보일 수도 있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체념하는 대신, 기자들이 좀더 명확한 원칙과 사명감을 가졌으면 좋겠어.

◇ 거슬리는 기사를 쓴 당신이 기레기?

불주먹=‘기레기’는 두 부류가 있어. 어뷰징하는 기사를 쓰면서 깊이 있는 취재를 하지 않는 기자, 그리고 민감한 사안을 취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대편의 공격을 받는 기자.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날펭=전자에 대해선 조국 정국 이후에 의미가 더해진 것 같아. 실제로 그 당시 처리된 온라인 기사가 다른 시기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았잖아. 일부 언론이 비판을 받게 된 것도 그 부분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고. 깊이 있는 취재보다는 ‘헐뜯기’에 가까운 기사도 적지 않았잖아.

누헨지니=그런데 단순히 우리 편을 때렸기 때문에 ‘기레기’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 예전엔 독자들이 자신의 정치성향에 맞는 매체만 골라보는 편이었다면, 요즘은 그렇게 특정 매체 기사만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잖아. 그 기자가 사실을 확인했는지, 논리가 잘 짜인 기사를 썼는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단지 ‘내 입장과 달라서’ 비난하는 경우도 많아졌어.

배테=맞아. 그런 점에서 보면 모든 기자가 ‘기레기’가 될 수밖에 없어. 정치 진영은 어쨌든 2개 이상이고 모든 진영을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 어떤 기사를 쓰던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모두 ‘기레기’가 되니까, 어떤 사람이 좋은 기자고 어떤 사람이 ‘기레기’인지 구분하는 게 더욱 어려워졌어.

뽀글이=그런 경향이 최근 들어 더 커진 것 같아. 그건 언론의 사회적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과도 관련 있는 것 같아. 비판하는 주체가 과거엔 언론에만 국한됐지만 이제는 언론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잖아. 누구보다 명확한 사실을 전달한다고 여겨지는 언론도 언제든 비난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어쨌든 너희는 기레기’라는 프레임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

도쎄=비윤리적이고 불성실한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비난을 받는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 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을 보도했단 이유로 기자라는 집단 전체가 ‘기레기’로 매도되는 현상은 문제가 크다고 봐.

불주먹=일부 언론인에 해당하겠지만, 책임을 간과하고 비윤리적 취재와 보도를 일삼는 기자들이 자초한 현상이기도 해. 하지만 의견이나 선호 차이를 이유로 무작정 비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 이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지 않으려면

누헨지니=어느 언론사 공채기자 시험문제로 ‘기자한테도 자격증을 발급하면 어떨까’라고 물어본 게 생각나. 윤리의식이나 전문성 등 기자에게 필요한 자질을 검증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갔어

배테=그러나 기자 자격증이 근본적 해결책이 되진 않을 듯해. 국가고시를 보고 자격증을 발급한다고 독자들이 만족할까. 오히려 단순히 기자를 보호해주는 방패로만 사용되지 않을까 걱정돼. 차라리 지금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훨씬 강화하는 게 필요할 거 같아. 세월호 사건 당시 기자들이 그렇게 비난을 받았지만, 재난보도나 연예인 자살사건 기사를 보면 달라진 게 없다는 목소리가 많잖아.

뽀글이=공감이야. 언론사 내부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교육도 하고, 보도준칙이나 강령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해.

날펭=언론 수용자의 문제는 없을까. 독자들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오히려 사실에 기반한 기사를 ‘가짜뉴스’라고 부르고 그런 기사를 쓴 기자를 ‘기레기’라고 욕하는 경우도 있잖아.

도쎄=최근엔 독자와 시청자가 미디어 생태계를 직접 만들어가는 환경으로 변했잖아. 포털기사나 유튜브 영상에 댓글을 남기거나 ‘좋아요’를 누르고, 언론사 채널을 구독하거나 구독을 취소하는 것처럼 말이야. 뉴스 생산자인 기자들에게 ‘너희가 이렇게 만들어서 문제야’라고 아무리 말해도 언론환경이 획기적으로 나아지긴 어렵잖아. 그래서 뉴스 소비자들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봐.

날펭=실제로 프랑스나 캐나다, 호주에선 미디어 수용자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기도 한대. 그만큼 언론 수용자의 역할도 중요하단 거지. 한국도 미디어 교육을 보편화하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한 질 낮은 기사는 멀리하고, 진실이 담긴 기사는 더 찾아 읽도록 유도하고 권장해야지.

배테=동감하지만, 난 여전히 뉴스 생산자인 언론사가 근본적인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 독자랑 시청자 탓을 하기 전에 ‘우리부터 달라지겠다’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게 출발점이 돼야 할 것 같아.

정리= 차승윤 인턴기자

참여= 김민준, 노희진, 이미령, 이정원, 이주현, 전혜원, 정해주, 차승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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