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17> 목포 원도심 1897 개항문화거리
“와~”, “우~”, “저 바다 건너가 삼학도야”, “일제시대 수탈 건물이 저기네, 저기”
지난 9일 오전 11시쯤 전남 목포 유달산 대학루로 오르자 탄성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명물 유달산의 다섯 정자 중 첫 관문에 해당하는 곳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목포근대역사거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일찌감치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이 ‘목포의 눈물’에서 노래한 목포의 한과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곳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관광객의 발길은 평소보다 뜸했지만, 목포의 ‘숨은 그림’을 찾는 발길까지 꺾지는 못했다. 인천에서 자녀들과 이곳을 찾은 이종득(50)씨는 “전날 밤 목포에 도착해 밤거리를 걸었는데 ‘이곳이 한국이 맞나’ 싶었다”고 했고, 그의 딸 명지(14)양은 “말로만 듣던 일본식 건물들이 120년 전 모습 그대로 널려 있어 신기했다”며 “다양한 문화재들과 박물관도 좋았다”고 말했다.
아픔 간직한 근대역사거리
목포는 1897년 대한제국의 탄생과 함께 자주적 개항을 기치로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일제 침략의 교두보이자, 수탈의 근거지가 됐다. 그로부터 123년이 흐른 항구와 시내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했지만, 항구를 향해 바둑판처럼 뻗은 길과 적지 않은 건물들이 한 세기 전 모습 그대로 남아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목포근대역사거리를 걷다 보면 ‘영화의 한 장면 속’,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라는 표현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붕 없는 박물관, 거리엔 450여개 문화재
근대역사거리를 걷다 보면 이런 말도 심심찮게 접한다. “멋진 정원과 2층 가옥은 일본인들이, 산동네, 항구는 하인처럼 살던 선조들이 채웠다.” 이 같은 사실을 증거하는 문화재들을 목포역을 중심으로 반경 1㎞, 국제여객터미널 주변, 유달산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1900년대 초 지어진 450여개의 일본식 건축물들은 3시간 정도 투자하면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등록문화재 제 29호)을 비롯해 구 목포일본영사관(국가사적 제289호), 해안로 일본식 상가와 주택, 1920년대 지어진 일본인 기독교 교회, 목포부립병원과 관사, 일제강점기 경제수탈의 대표적 기관인 구 동양척식 목포지점(전남 기념물 제 174호), 일본인 자녀들의 교육기관 공립심상 소학교 강당(등록문화재 30호), 목포진지 등 다양하다. 일본식 적산가옥들은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로 변신했는가 하면 추억의 사진관으로 활용되고 있고 일부는 작가작품 전시회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쓸쓸히 방치된 건물들도 적지 않다.
문화해설사 전영자(55)씨는 “지난 2018년 8월 문화재청이 이 일대(11만4,038㎡)를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문화재(제718호) 등록을 했다”며 “국내 최초로 근대문화유산의 입체적 보존과 활용을 동시에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ㆍ드라마 촬영지로 각광
시화골목을 걷다 보면 목포를 품은 유달산 아래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예향의 도시답게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해방 후 일본인 지주가 떠나면서 인수받았던 조선내화 창업주 이훈동(작고) 회장의 호를 딴 성옥기념관과 1만여㎡ 일본식 정원은 목포시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다. ‘모래시계’와 ‘야인시대’ 등 다수의 드라마 촬영지로도 알려졌지만 야외결혼 촬영지, 한국화와 서예작품 전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작품 사진을 찍기 위한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이 번잡함을 피해 3분만 걸으면 만날 수 있는 빨간 벽돌 건물은 시선을 사로 사로잡는다. 인기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주 촬영지다. 일본영사관이었던 근대역사관은 드라마 방영 이후 주말이면 젊은이들로 가장 붐비는 곳이다. 50년 전통을 이어가는 할머니의 떡집, 저마다의 개성을 살린 게스트하우스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어부의 희로애락 묻은 시화골목
유달산 자락을 따라 서산ㆍ온금동으로 걸어가면 세 갈래의 골목길에서 연희네 슈퍼를 만난다. 영화‘1987’ 촬영지다. 영화에서 연희(김태리)의 삼촌(유해진)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비밀거처로 활용한 이 작은 구멍가게 1980년대 분위기를 한층 느끼게 한다. 100m 남짓 비탈진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주택들이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또 바다에 나가 거물을 올려 생계를 꾸리는 어민들의 삶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한 시화골목은 요즘 목포에서 가장 뜨는 곳 중의 하나다. 가난한 어부들이 물때에 맞춰 사랑놀이 하다 아기를 밴다는‘조금새끼’란 신조어 탄생 배경의 시와 그림, 마누라밖에 모르다가 딸 하나 낳고 마흔여덟에 바다로 갔다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그리며 연탄지게꾼이 된 한 할머니의‘내 인생’ 등의 작품도 구경할 수 있다.
전국 최고의 9미(味) 맛 자랑, 민어의 거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목포 하면 역시‘맛’이다. 지난해‘맛의 도시 목포’선포식을 갖고 홍보대사로 뛰고 있는 연예인 박나래씨는“목포는 맛집을 별도로 추천할 데가 없다. 어딜 가서 무얼 먹든 그 집이 맛집”이라고 강조한다. 목포가 자랑하는 ‘9미’에는 세발낙지, 홍어삼합, 꽃게무침, 민어회, 갈치조림, 병어회(찜), 준치무침, 아구탕, 우럭간국 포함된다. 이 외에도 싱싱한 해산물의 집산지인 목포에는 근대역사거리 구석구석, 두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도 어머니의 손맛을 자랑하는 밥상집들이 즐비하다. 특히 이곳은 목포의 대표 생선을 맛볼 수 있는 ‘민어 거리’도 형성돼 있다. 회뿐만 아니라 껍질, 부레, 뱃살, 지느러미 등을 이용한 요리까지 맛볼 수 있다. 정갈스런 젓갈과 매운(지리)탕은 화룡점정이 된다.
서울에서 내려온 박민정(24)씨는“친구들이 줄을 서서라도 민어를 맛보고 오라고 해서 먹었다”며 “회가 입에서 녹고, 다른 음식들도 서울에서 맛 볼 수 없는 다른 맛이 있다”고 평가했다.
역사공간 문화재 야행(夜行)
근대역사공간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목포 시민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가을 첫 개최된 목포 문화재 야행은 ‘Back to the 100, 목포 1000년의 꿈’이라는 부제로 개최됐는데, 무려 5만여명이 참가했다. 시민 참여‘아리랑 플래시몹’을 시작으로 ‘100년의 소리’ 피아노 공연, ‘패션 1987’, 목포시립예술단 6개 단체의 합동공연 등이 큰 호응을 얻었다. 또 시는 지난해 9월 원도심 일대에서 지붕 없는 박람회인 ‘전남 혁신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올해는 문화재 야행과 상생문화재 사업 등 3개사업이 문화재청 공모사업으로 진행 될 예정이다. 서울 선 온 관광객 유영선(51)씨는 “목포근대역사의 거리와 문화공연은‘흙 속의 진주’같은 역사의 산실”이라고 말했다.
100년 품은 원도심, 미래 100년을 담보한다
1914년 호남선 철도가 개통으로 항만과 내륙을 연결하는 물류산업이 발달하면서 목포는 3대항 6대 도시로 성장했다. 세월이 흘러도 당시의 모습을 원형대로 간직하고 있는 장소는 목포가 국내에서 유일하다. 이에 시는 올해 우선적으로 문화재 보수정비와 지상 경관을 저해하는 전신주 등을 정비하는 지중화 사업과 디자인 간판으로 거리를 정비, 목포를 보다 더 걷고 싶은 도시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국내 최초의 자주 개항도시, 근대계획도시, 지붕 없는 박물관 등의 수많은 별명을 가진 목포는 도시재생을 향한 계획과 포부로 차별화된 관광도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종식 목포시장은 “100년 전 국내 중심지였던 목포가 도시재생과 문화재 활용 사업을 통해 100년을 내다보는 도시 기반을 다지고 있다”며 “국제적 도보관광 거점 도시로 조성, 목포만의 근대역사문화도시를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목포=글ㆍ사진 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