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길순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지난 11일 서울 홍은동 대학 연구실에서 '서소문역사공원'을 명실상부한 '역사공원'으로 되돌려놓는 방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서소문공원은 예전에 꽃시장이 있을 때 노숙자들이 많았습니다. 얄궂게도 결과적으로 천주교가 그들을 내쫓은 셈이죠.”

지난 11일 서울 홍은동 명지전문대에서 만난 채길순(65) 문예창작과 교수는 여전히 서소문역사공원 문제에 매달려 있었다.

서울 중구 서소문 일대는 2013년 역사공원화 사업이 시작됐다. 2014년 발족한 ‘서소문역사공원바로세우기범국민대책위원회’는 강력한 반대 세력이었다. 서소문 일대는 원래 처형장이었다. 44명의 천주교 성인이 순교한 곳이기도 하지만, 동학ㆍ천도교 지도자들은 물론 조선시대 사상가들이 참수된 곳이다.

범대위는 이런 역사를 다 내다버리고 오직 천주교의 성지이기만 한 것처럼 조성하는 건 문제라 주장했다. 채 교수는 범대위 연구위원장이었다. 천주교 내부에서도 서소문공원을 내려다보는 약현성당에 성지기념관이, 공원 안에 순교자 현양탑이 있는데 굳이 서소문역사공원 안에다 천주교 색채가 짙은 박물관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명지전문대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 중인 이 대학 채길순 교수. 박형기 인턴기자

“사업 막바지였던 2017년이었을 거예요. 중구 의회에서 공원 조성 예산안을 막아선 적이 있었습니다. 범대위의 설득 덕이었지요. 그 때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신도 15만명의 공사 촉구 서명을 받아 의회에 내더군요. 예산안은 결국 통과됐습니다.” 반대운동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고, 서소문역사공원 조성 사업은 지난해 마무리됐다.

무릎이 꺾일 법도 한데 채 교수는 집요했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소문역사공원 조성 사업에 국고 보조금을 줄 때 공문에서 ‘천주교 성지’라는 표현을 삭제했습니다. 종교 편향 사업에 국고를 지원하기 어렵다는 점을 의식한 겁니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황을 그는 견디기 힘들었다.

채 교수는 1995년 한국일보 광복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흰옷 이야기’로 당선된 소설가다. 이 소설에 충청도 동학 운동이 등장하는데, 그 때문에 동학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서소문의 상징성을 이해하게 됐다. 그는 “봉준호 감독 영화로 치면 ‘설국열차’의 꼬리 칸, ‘기생충’의 반지하처럼 핍박 받는 서민들의 역사적 공간이 서소문”이라며 “그런 곳을 특정 종교가 독점하는 건 정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개관한 서소문역사공원 내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내부 시설 안내를 보면 명백한 천주교 박물관 시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게 채길순 교수의 주장이다. 채길순 교수 제공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시민단체 종교투명성센터가 최근 나랏돈 570억여원이 투입된 공간의 운영권이 천주교 측에 위탁돼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채 교수는 다시 각오를 다졌다. “가본 사람은 압니다. 서소문역사공원이 결국 천주교성지라는 걸. 이름 그대로 역사공원이 될 때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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