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법 제정 이후 현실은 바뀌었나
지난달 9일 ‘재윤이법(중대 환자안전사고 발생시 보고 의무화)’이 어렵사리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재윤(당시 5세)군이 사망하고 2년 2개월, 법안이 발의된 지 2년만이었다. ‘하준이법(경사진 주차장 설치시 미끄럼 방지 및 안내표지 의무화)’과 ‘예강이법(진료기록 수정시 원본 및 수정본 의무 보관)’도 희생자 사망일로부터 각각 4년 및 2년이 지나서야 국회 문턱을 넘었다.
유족들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길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동안 이들 옆에서 조력자가 돼준 이들이 있다. 안기종(50) 환자단체연합회 대표와 장하나(43) 정치하는엄마들 사무국장이다. 이들은 희생자들의 사연을 토대로 정부에 정책 제언을 하고 국회 입법을 도왔다.
1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안 대표와 장 사무국장은 입법 규제의 중요성과 법안 통과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장 사무국장은 “안전사고 가해자를 과실치사로 처리하는 건 국민들의 목숨 값이 너무 낮게 책정돼 있다는 의미”라며 “‘민식이법(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카메라 설치 의무화ㆍ안전의무 어긴 가해자 가중처벌)’이 통과 된 후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날 때 브레이크를 밟는 내 모습을 보고 입법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안 대표 역시 “중대 사고 발생시 의료인 면허를 취소하는 등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어렵게 법안을 발의해도 의사협회 등으로부터 로비와 압박이 들어와 무산되기 일쑤”라며 “지금 준비하고 있는 ‘권대희법(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도 처음에는 국회의원 10명이 법안을 발의했다가 의사들의 압박으로 5명이 발의를 철회하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안 대표가 국회에 직간접적으로 입법요구를 한 경우는 20번이 넘지만, 이 가운데 실제로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예강이법’과 ‘재윤이법’을 포함해 5건뿐이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법을 통한 강한 처벌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장 사무국장은 “‘하준이법’은 가중처벌을 하자는 게 아니라 주차관리자가 경사도를 측정하고 이를 이용자에게 알리자는 것이 취지”라며 “그간의 입법요구도 궁극적으론 사고예방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입법부 못지 않게 행정부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사무국장은 “지난달 서울 신월동에서 아이가 길을 걷다가 굴착기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알아보니 몇 년 전 같은 장소에서 성인 여성도 비슷한 사고를 당했다”며 “경찰서, 지방자치단체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고가 났으니 앞으로 이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야 하는데 이런 체계가 전혀 잡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안 대표 역시 “현재는 유족들이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며 증거를 수집해야 하고, 어렵게 의료기록지를 구해도 이를 분석하는 게 쉽지 않다”며 “환자안전재단 등의 기관을 만들어서 왜 사고가 발생했고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 등을 유족에게 알려주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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