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美 ‘38세 부티지지’ 돌풍… 한국 정치엔 왜 없을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美 ‘38세 부티지지’ 돌풍… 한국 정치엔 왜 없을까

입력
2020.02.13 04:30
수정
2020.02.13 07:06
1면
0 0

 美 민주 대선 경선 38세 주자 부상, 남성 배우자 둔 性소수자 

 여의도선 ‘새 얼굴’ 요구에도 50세 이상ㆍ명망가 ‘분칠’만 

미 민주당 경선 후보인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9일(현지시간) 뉴햄프셔 내슈아에서 열린 선거 유세 행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미소 짓고 있다. 내슈아=AP/뉴시스
미 민주당 경선 후보인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9일(현지시간) 뉴햄프셔 내슈아에서 열린 선거 유세 행사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미소 짓고 있다. 내슈아=AP/뉴시스

‘부티지지 돌풍’이 거세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경선 레이스를 뒤흔들고 있는 최연소 주자 피트 부티지지(38)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얘기다. 그는 연일 이변을 만들고 있다. 레이스의 첫 관문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턱밑까지 따라 붙는 2위에 올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양강 구도’를 만든 것이다. 내년 1월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을지 여부를 떠나, 그는 이미 ‘이슈의 지배자’가 됐다.

한국 정치에 익숙한 눈으로 보기에 부티지지의 상승세는 여러모로 낯설다. 중앙 정치에선 존재감이 거의 없는 30대 신예, 그것도 남성 배우자를 둔 성소수자 후보라는 점부터 생경하다. 그의 핵심 지지층이 소수자가 아닌 고학력 백인 중ㆍ장년층, 즉 주류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소수자는 소수자들의 간절한 지지를 받아 간신히 권력 근처에 도달하는 게 여의도의 문법이기 때문이다. ‘신인’ ‘젊음’ ‘소수자’가 강점이 아닌 ‘삼중고’로 작동하는 한국 정치 풍토를 감안하면, ‘한국판 부티지지 돌풍’은 한국엔 당분간 오지 못할 먼 미래다.

부티지지의 지지자들은 그를 ‘트럼프의 강력한 대항마’로 꼽는다. 그를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실질적 대안’으로 본다는 뜻이다. ‘젊은 후보’ 보다는 ‘머리가 희고 중후한 후보’가 강한 후보이자 이길 후보로 통하는 한국 정치의 풍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여의도와 워싱턴은 ‘정치인의 성장 경로’부터 다르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12일 “미국 대선 레이스는 새 인물을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마케팅의 과정”이라며 “이 과정에서 부상하는 인물들은 인종이나 여타 정체성에서 소수자, 아웃사이더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박 학교장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티지지 같은 새 인물은 정체성으로는 아웃사이더이지만, 지역에서 주지사, 지방단체장 등으로 오랫동안 정치 경륜을 쌓다 등장하는 패턴을 보였다”고 했다.

미국 정치에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 스타’는 없다는 얘기다. 다양한 정체성의 인물들이 현실 정치의 이력을 쌓으며 준비하고 있다가 기회를 만났을 때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부티지지 역시 초임 시장으로서 지역경제를 살려 낸 공으로 압도적 지지율을 얻어 재선에 성공한 신화가 대선의 발판이 됐다. 그가 ‘깜짝 스타’가 아니라 ‘진흙 속 진주’라는 뜻이다.

미국에선 ‘진주’가 되기 위한 준비가 상대적으로 일찍 시작된다. 8년간 사우스벤드 시장을 지내고 지난해 초 퇴임할 당시 부티지지는 37세였다. 한국에선 30대의 대선 후보는커녕 30대 지방단체장조차 없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장의 평균 연령은 만 61세(당시 기준)였다. 최고령인 이시종 충북지사는 71세, 최연소인 김경수 경남지사마저 50세였다. 최연소 기초단체장은 임병택(민주당) 시흥시장(1974년생ㆍ당선 시점 43세)이었다. 출발이 늦다 보니 당내 기반과 이력을 쌓아 대선 후보로 부상하려면 50대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유권자들부터 ‘우리 동네에는 장관쯤은 지낸 지긋한 후보가 와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어느 자리든 젊은 후보를 내긴 불안하다는 게 기성 정당들이 지닌 보편 정서”라고 했다. 천신만고 끝에 구의원, 시의원, 각종 단체장 등으로 정치를 시작해도 그 다음 스텝으로 올라서기는 쉽지 않다. 4ㆍ15 총선에 도전하는 단체장 출신 인사는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선거의 룰이 설계돼 있다”며 “기초단체장 등으로 시작하는 정치인들이 대선은커녕 국회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라고 말했다.

차근히 인재를 키우지 않는데다, 젊었을 때부터 기회를 주지 않고, 뒤늦게 어렵게 기회를 얻은 이들 앞에는 끊어진 사다리가 놓여 있는 곳이 바로 여의도다. 한국 대선이 대선이 정치권에 오래 머문 ‘그 때 그 사람들’ 아니면 정치 경험은 짧지만 명망가로 인기를 얻어 ‘메시아’처럼 등장한 이들의 맥 빠진 경쟁이 되기 십상인 이유다.

부티지지와 같은 소수자성이 현실 정치에 녹아 드는 방식도 다르다. 박상훈 학교장은 “선진국에선 소수자와 약자들이 관련 단체 등에서 쌓은 활동의 결과로 리더십을 인정받고, 정당의 눈에 띄어 발탁되고, 이후 전국 이벤트에서 이력이 폭발해 정치 전면에 등장하곤 한다”며 “한국 정치에서 부각되는 정체성이라고는 법조인, 언론인 등 특정 직업 정도”라고 했다.

선진국에 비해 뒤처진 인권 감수성도 넘어설 산이다. 정의당 차별금지법추진 위원장이자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김조광수 감독은 “소수자 정치인이 잘되는 것도 어려운 일일뿐더러, 기성 정치인이 소수자성에 대해서 의견 내는 것 조차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1977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이 된 미국 최초 동성애자 정치인인 하비 밀크의 시간으로부터 치면 미국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40년이나 걸린 것”이라며 “한국도 점진적으로 나아가고는 있는 만큼, 각 정당이 긴 호흡으로 어떤 성과를 만들 수 있을지 보다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