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제로금리 기조 흔들리나
한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해마다 오르는 부동산이 골칫거리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저금리로 인해 부동산 가격만 치솟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평생 집을 갖지 못할 것 같다”는 구매 포기자들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수년 간 제로(0) 기준금리를 고수해온 유럽중앙은행(ECB)도 고민에 빠진 모양새다.
12일 유럽연합 통계국(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유로존의 주택가격지수는 연간 4.1%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은 1%대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주택가격만 ‘나홀로 질주’를 하고 있는 셈이다. 유럽의 집값은 금융위기로 급락한 2008년 이후 큰 변동이 없다가 2015년부터 이 같은 상승세가 꾸준히 이어지는 추세다.
이와 관련, 유럽의 금융그룹 ING가 최근 공개한 자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럽 거주민의 70%가 ‘점점 부동산 구매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주택 구매자의 38%는 ‘평생 집을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유럽 주요 10대 도시의 집을 구매하려면 평균 가처분소득을 15년간 저축해야 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소득에 비해 집값이 계속 오르면서 사실상 구매 포기 의사를 밝히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도 커지는 분위기다. ING 설문조사에서 주택 시장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55%를 차지했다. 2017년의 45%, 2018년의 53%에 비해 꾸준히 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를 비롯한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ECB에서도 전향적인 움직임이 감지된다. 저금리가 경제성장률은 개선하지 못하는데 집값만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ECB는 지난달부터 통화정책 전략 재검토에 들어갔는데, 필립 레인 ECB 수석 경제학자와 옌스 바이트만 독일연방은행 총재 등이 주거비가 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보다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다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집값은 상대적으로 부침이 심하기 때문에 물가 변동성을 실제보다 과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경제학자 출신인 호나스 페르난데스 유럽의회(EP) 의원은 “ECB가 물가 목표치 2%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으니 통계를 바꿔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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