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경영 넘어 ‘위기경영체제’에 돌입한다.”
이석주 제주항공 대표가 12일 사내 메일로 공지한 위기경영은 비장했다. 핵심 내용은 경영진 임금의 30% 이상 반납과 승무원까지 진행 중이었던 무급휴가의 전직원 확대다. 난기류에 봉착한 건 제주항공뿐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한항공을 포함한 국내 모든 항공사 사정은 비슷하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에선 요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사실, 신종 코로나는 기폭제에 불과했다. 항공업계의 기초체력은 이미 추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비행기만 띄우면 돈이 된다”며 앞다퉈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이륙하면서 공급은 넘쳐났지만 예기지 못한 외부 돌발 변수도 잇따라 터지면서 수요는 급감했다. 덩치만 커지고 체력이 떨어진 국내 항공업계는 2017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제재에서부터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 갈등과 지난해 발발한 한일 무역 분쟁에 이어 보잉 비행기 기체 결함 이슈 및 올해 터진 신종 코로나 등장 등으로 불시착 직전 상태까지 내몰렸다.
문제는 해법 부재다. 현금장사인 항공업의 특성상 수요가 마르면 위기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여객 없이 비행기를 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항공사 입장에선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믿는 구석은 정부 지원이지만 기대에 그칠 뿐이다. 지난 10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뒤늦게 항공사 대표들과 만나 대안 마련에 나섰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말로는 ‘전방위 지원’을 내세웠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나온 건 ▦한ㆍ중 운수권과 슬롯 미사용분 회수 조치 유예 ▦공항 사용료 감면 검토 ▦수요 탄력적인 부정기편 운항 등을 위한 행정 지원이 전부다. 당장 현금 지원이 급하지만 정부에서 제시한 선택지엔 빠졌다. 항공업계에선 특별 금융이나 수천억원이 쌓인 ‘관광개발진흥기금’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항공업계 체력 저하 원인은 결국 차별성 없는 공급과잉에서 비롯됐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정부만 바라보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향후 무역분쟁이나 전염병과 같은 대외 리스크가 상시화 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인 만큼 업계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자금력이 풍부한 투자자를 찾고 리스크를 회피할 정도의 차별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건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번이야 말로 항공업계가 자체 기초체력을 키워야 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김경준 산업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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