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취임 시부터 함께 해 온 측근인 안드리 보흐단 비서실장을 해임하고 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 보좌관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예르마크 신임 비서실장은 지난 5일 종결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 탄핵심판 무죄 판결에 힘을 실어 준 인물이어서 이번 인사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전략적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국내 정책을 감독해 온 보흐단 전 실장과 대조적으로 예르마크 실장은 국제관계에 특화된 인물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원조와 연계해 우크라이나 당국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조사를 압박했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 국면에 깊이 관여돼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통화가 이뤄진 뒤 일주일 만인 지난해 8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만났다. 탄핵 정국 중에는 고든 선덜랜드 주유럽연합(EU) 미 대사가 “안드리 예르마크에게 ‘미국의 원조 재개는 우크라이나가 (바이든 부자 관련) 반부패 문제 조사를 약속하는 공식 성명을 내놓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증언하자 예마르크는 기자들에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번 비서실장 교체는 국내적으로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올리가르히(정치ㆍ경제 융합 과두세력)와의 연결 고리를 끊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이기도 한 보흐단 전 실장은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올리가르히로 꼽히는 금융재벌 이고르 콜로모이스키 담당 변호사 출신이다. 콜로모이스키는 은행과 에너지ㆍ항공업뿐 아니라 TV 방송채널 ‘1+1’을 소유하고 있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1+1에서 방송 활동을 했고, 대선 출마 선언도 1+1을 통해서 했다. 따라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취임 이후 줄곧 ‘올리가르히의 도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그의 반부패 개혁 정책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이런 사정에 미뤄 보흐단 해임은 콜로모이스키의 세력 약화를 뜻한다는 평가다. 정치 분석가 바심 카라세프는 “보흐단 해임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콜로모이스키로부터 거리를 둘 준비가 됐다는 의미”라며 “예르마크 신임 실장은 줄리아니 전 시장의 친구가 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을 이해하게 된 인물인 만큼 미국과의 관계도 훨씬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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