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근기법)은 숫자 ‘5’ 앞에서 머뭇거린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주요 권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차ㆍ생리휴가를 쓸 수 없고, 주 40시간 법정근로시간이 적용되지 않아 무제한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이유 없이 해고를 당해도 부당해고 여부를 다툴 수 없다.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직장 갑질 괴롭힘 방지법’에서도 이들은 예외다. 설 추석 같은 공휴일은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유급휴일로 바뀌지만,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언제 적용될지 알 수 없다.
□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지난해 기준 603만명, 임금 근로자 네 명 중 한 명꼴이다. 이들은 주휴수당 퇴직금 등 일부 권리는 보호받지만, 법에 보호ᆞ차별 규정이 혼재한 탓에 현장에선 확보된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5인을 법 적용의 기준으로 삼은 근기법 조항의 평등권 침해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가 1999년 영세사업장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뒤 이 해석은 요지부동이다. 지난해 4월 이 조항의 위헌심판 사건에서는 이 조항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소수(2명)였다. ‘씁쓸한 진전’이라고나 할까.
□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올해 노동계는 해묵은 과제인 ‘5인 미만 사업장 권리찾기’ 운동에 나섰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옥중에서 구상해 꾸려진 노동사회네트워크 ‘권유하다’는 지난 5일 이런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찾기 운동을 돕는 온라인 플랫폼을 개통, 교육ᆞ입법활동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최근 정의당은 진보 색채를 강화한다며 이른바 전태일 3법의 하나로 근기법 적용의 5인 조항을 삭제하는 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놨다.
□ 법 전면 개정을 통한 완전한 노동권 확보가 궁극적인 목표지만, 노동계의 핵심 요구는 5인 미만 사업장의 40시간 법정 근로시간 적용이다. 이 경우 시급의 150%인 연장ㆍ야간 수당을 받게 된다. 반면 문재인 정부 출범 첫 2년간 최저임금 30%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이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그렇다고 파견ㆍ플랫폼 업체 활용 등 외주화의 영향으로 과거와 달리 적은 인력으로 쉽게 사업장을 운영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작은 사업장 노동권 보호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노동 친화’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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