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유서 올리며 피해예방ㆍ처벌강화 호소
“피해 사례 널렸는데 사회 대책 마련 못해…죽음 헛되이 말아야”

검사와 검찰 수사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기에 속아 돈을 빼앗긴 후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28살 취업준비생 김모 씨의 아버지라 밝힌 청원인이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피해예방과 처벌강화를 호소했다.
이 청원인은 이날 오전 ‘내 아들을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 잡을 수 있을까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며 “얼마 전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국민 여러분께 나누고, 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한 것”이라고 청원 취지를 밝혔다.
그는 이 글에서 아들의 유서 전문을 공개하고 통화녹음 등으로 파악한 사건의 전말을 밝혔다. 유서에서는 김씨가 서울중앙지검 검사라 사칭하는 이의 보이스피싱 전화를 실수로 끊은 뒤 추가 연락을 받지 못 하자, 가짜 검사가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해 피해자에서 피의자로 전환하겠다고 협박을 했고 여기에 김씨가 큰 중압감과 죄책감을 느낀 정황이 상세히 서술돼있다.
청원인은 “아들은 평소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여려 대학에서도 다리가 불편한 친구의 휠체어를 끌고 4년간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며 우애를 쌓아 대학 신문에 실리기도 했던 아이”라며 “그런 아들은 행여 수사에 누가 될까 (사칭) 담당검사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수사에 적극 협조했고 실수로 통화가 끊기자 본인에게 다가올 처벌을 기다리는 동안 불안과 초조에 떨며 스스로를 질책했다”고 말했다.
이어 “검사님 말씀이 두려워 그 어떤 친구나 친지, 부모에게도 논해보지 못했고, 결국 사건이 벌어진지 3일 만에 옥상으로 올라가 가슴 아픈 결단을 하게 된 것”이라며 “보통 이런 경우 어리숙했다고 쉽게들 판단하지만 행정안전부 통계상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1년에 약 2만 여명에 달하는데 이들을 모두 그저 ‘운이 없었다’, ‘어리석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냐”라고 물음을 던졌다.
아울러 “천지에 널려 있는 보이스피싱 사례를 보고도 이 사회가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 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피해 사실을 널리 알리고 가까운 이웃과 가족들이 이런 분통한 죽음을 겪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체적ㆍ실제적인 매뉴얼 및 사례집 제작 후 각 가정과 학교에 보급 △직장과 학교 대상 예방교육 실시 △보이스피싱 관련자 처벌 강화 등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피해자 김씨는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팀장 김민수 검사’라는 이로부터 “계좌가 대규모 금융사기에 연루돼 먼저 돈을 찾아야 하는데 수사가 끝나면 돌려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 사기범은 가짜 검찰 출입증과 명함을 보여주며 전화를 끊지 못 하게 했고, 무려 총 11시간을 통화하다 김씨에게 여의도 한 카페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돈을 챙겨 달아났다. 이후 이들과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자 충격을 받은 김씨는 이틀 뒤 극단적 선택을 했고, 김씨의 유서와 휴대전화 내역을 통해 이 같은 정황을 확인한 부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현재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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