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병원 이송작전에 지방정부 관계자 코빼기도 안 비쳐
버스 기사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아무런 추가 지시 없어
중앙 정부 “엄중 책임”… 우한 보건 당국 책임자 2명 경질
“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요.”
10일 새벽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퉁지병원. 우창에서 온 30여명의 노인들이 접수창구 앞에서 애를 태우며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손에는 저마다 주섬주섬 챙겨온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탈출하다시피 급하게 집을 떠나 병원에 왔지만 이들을 마중 나온 의료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9일 자정 무렵 당국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따라 집을 나섰다. 34번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좌석이 부족해 일부 노인들은 차가운 버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버스가 동네의 좁은 골목길에 갇혀 빠져나가는데 한참 동안 애를 먹었다. 더구나 현장에 지방정부 관계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얼떨결에 지시를 받고 투입된 버스기사만 된서리를 맞았다. 옴짝달싹 못하는 버스 안에서 노인들은 애꿎은 기사에게 화풀이를 하며 심지어 때리려고 달려들었다. 버스기사는 중국 환구시보에 “당국에서 노인들을 태우라고만 지시했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면서 “병원에 가봐야 병실도 없는데…”라고 짜증을 냈다.
우여곡절 끝에 골목길을 빠져 나와 병원에 도착했다.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모두들 폭발 직전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이들을 맞이하는 의료진은 아무도 없었다. 지방정부와 병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통에 한밤중에 어렵사리 병원을 찾은 노인들은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노인들은 버스에서 내려 줄지어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고 절규했다.
이날 우한시는 주택가를 봉쇄하고 외출을 차단하는 초유의 통제조치를 취하면서 자가 격리 중이던 주민 1,500명을 모두 병원으로 옮겼다. 가족과 이웃을 통한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병원 이송이 결정되면서 현장에서는 혼란이 적지 않았다.
어쨌든 노인들을 무사히 병원에 데려다 줬지만 버스기사는 보람은커녕 울분만 쌓였다. 그는 “아이구 머리야, 나도 병이 옮은 것 같아”라며 “오늘은 고혈압 약도 먹지 못했는데 게다가 끼니도 거르고, 젠장”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하염없이 당국의 다음 지시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 정부는 10일 우한의 관리들을 불러 이날 병원에 온 노인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 일일이 사과하도록 했다. 또 “당과 정부의 규율에 따라 엄중히 책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후베이성 위생건강위원회 장진(張晋) 당서기와 류잉즈(劉英姿) 주임 등 보건 당국 책임자 2명은 전격 경질됐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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