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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텔레그램 n번방’ 청원자 "분노한 여성들이 10만명 기적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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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텔레그램 n번방’ 청원자 "분노한 여성들이 10만명 기적 일궜다"

입력
2020.02.12 04:30
수정
2020.02.12 10: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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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민동의청원 첫 요건 충족

“디지털 성범죄 근절” 절박한 외침, 지난달 15일 국회 홈피 청원 등록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에 이슈화…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 올리기…

5만서 멈칫했던 동의 인원, 여성들 자발적 노력으로 법안 추진까지

지난 10일 통과된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 페이지.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캡처
지난 10일 통과된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 페이지.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캡처

“텔레그램뿐 아니라 어떤 형태로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방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20대 여성 A씨는 11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A씨는 지난 10일 ‘30일 내 10만명 동의’ 요건을 충족한 첫 번째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등록한 당사자다. 해당 청원에는 ‘텔레그램 n번방’으로 알려진 디지털 성범죄 등을 근절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이름도 생소한 청원이 통과되기까지는 친구들뿐 아니라 인터넷상 얼굴도 모르는 여성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다”고 말했다.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등록된 건 지난달 15일이다. A씨는 청원에서 △적극적인 국제공조수사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 상향을 요구했다.

A씨가 겨냥한 n번방은 디지털 성범죄가 벌어지는 비밀 대화방을 지칭한다. 가해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성 수십 명의 개인정보를 해킹하고 이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 등을 찍도록 강요했다. 이렇게 찍은 영상은 텔레그램에서 ‘1ㆍ2ㆍ3번방’ 등 숫자가 붙은 비밀방에서 돈을 받고 팔렸다. 피해 여성 중에는 10대 청소년이 포함돼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A씨의 청원이 10만명 동의에 도달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엔 관심 있던 사람들이 몰리며 동의가 늘었지만 5만여명 이후부터 정체기가 왔다. 청원 종료일인 14일을 한 주 앞둔 지난 주말에는 7만8,000여명에서 멈칫했다. A씨는 “이대로 끝나선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며 “주변 친구들과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 등에 끊임없이 이슈화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대로 여성들이 SNS에서 #n번방_국회청원 #n번방사건_이슈화 해시태그를 활용하는 등 공론화를 이끌었다. A씨는 “해시태그 활용이 여성 문제에 관심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퍼지며 청원 동의 수를 확 늘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6일 일반 여성들이 트위터에 개설한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리셋)’도 큰 힘이 됐다. 리셋은 이번 청원을 홍보하기 위해 지난 9일 n번방 청원을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에 올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리셋은 운영 규모와 구성원 등을 철저하게 감추고 활동한다. 리셋 관계자는 “가해자들이 있는 텔레그램 방에서 우리와 관련한 기사 등을 끊임없이 공유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A씨도 현재 리셋에서 활동 중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리셋)이 지난 주말을 앞두고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대한 관심을 끌어 올리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홍보 이미지. 리셋 트위터 캡처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리셋)이 지난 주말을 앞두고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대한 관심을 끌어 올리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홍보 이미지. 리셋 트위터 캡처

지난달 일반인 여성이 트위터에 만든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촉구시위’ 계정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힘을 모으고 있다. 다음달 7일 오후 4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집회도 준비 중이다. 이 단체엔 23명의 일반인 여성이 참여해 연출ㆍ홍보ㆍ안전 등을 분담하고 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혜화역 시위, 미투 등을 거치며 20, 30대 여성들이 ‘다른 세대와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경험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며 “우리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생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 A씨의 국민동의청원은 소관 상임위 심사 등을 거쳐 법안 심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해당 법안이 이미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및 관련 위원회에 회부됐다”며 “관련 절차를 밟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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