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퀸과는 12,13년 파트너십을 이어왔다. 4편을 같이 했다. 톰 퀸의 네온과 CJ ENM이 두 개의 바퀴처럼 오스카 캠페인을 굴려나간 것 같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 직후 한 말이다. 숨은 공신 톰 퀸을 추어올린 것이다. 그는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인 네온의 대표다. 봉 감독은 “후보에 오른 경쟁작들은 거대 스튜디오 작품이라 예산 등 모든 면에서 불리한데 발로 뛰어 이를 극복했다”고 다시 한번 찬사를 보냈다.
봉 감독과 퀸의 인연은 오래 됐다. 퀸은 매그놀리아픽쳐스에서 일했다. 저예산 해외 영화 수입을 했던 이 회사에서 퀸은 봉 감독의 작품 ‘괴물’(2006) ‘마더’(2009)의 미국 배급 업무를 맡았다. 퀸은 2011년 인디영화계를 주름잡던 와인스틴컴퍼니로 이직한 뒤에도 봉 감독의 ‘설국열차’(2013) 배급 실무를 맡았다.
단순 실무자에만 그친 건 아니었다. 퀸이 일한 와인스틴컴퍼니의 대표는 2017년 영화계 미투로 몰락한 하비 와인스틴이었다. 미투 이전 와인스틴은 ‘가위질’로 악명이 높았다. 흥행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제작자나 감독이 반대하건 말건 필름을 뭉텅 잘라내기 일쑤였다.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개봉 자체를 미뤄버리는 등 치사한 복수도 서슴지 않았다.
그 와인스틴 눈에 ‘설국열차’가 걸려들었다. 그가 보기에 ‘설국열차’는 미국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인데다, 러닝타임은 126분으로 지나치게 길었다. 와인스틴은 20분 가량을 덜어내겠다 했다. 봉 감독이 거부하면서 양측 갈등이 깊어지자, 미국 언론이 이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 때 퀸이 봉 감독 편에 섰다. 그 덕에 ‘설국열차’는 2014년 1초도 잘리지 않은 채 개봉됐다. 퀸이 2017년 네온을 설립했다. 신생회사였지만 ‘기생충’의 북미 배급권을 따냈다. 네온은 ‘살인의 추억’(2003) 북미 판권도 최근 확보했다.
의리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아이디어도 있었다. 미국에서 ‘기생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기반으로 한 ‘입소문’으로 흥행세를 키워나갔다. 연예전문매체 버라이어티 등에 따르면 인스타그램 등을 통한 미국 내 홍보전략은 퀸의 아이디어였다. 남다른 인연을 지닌 봉 감독과 퀸의 오스카 캠페인으로 4관왕의 기적이 일어났다.
로스앤젤레스=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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