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예규 7차례 바꿨지만… 판례 못 따라온 성별정정 제도史
우리 법원도 젠더 문제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시각을 교정하고 있다. 트랜스젠더를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성별정정을 위해 대법원 예규도 7차례나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허가 요건이 까다로워 급격히 변화는 사회현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법원이 처음 지침을 마련한 계기는 2006년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이용훈 대법원장)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2004년 청주지방법원이 한 트랜스젠더 남성의 성별정정 신청을 기각한 결정을 파기환송하며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 해 9월 하급심 법원들이 참고하도록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제정했다.
대법원 예규가 크게 바뀐 첫 번째 계기는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당시 인권위는 진정 받은 내용을 토대로 외부성기성형수술을 요구한 항목 등 6가지 요건이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결정했다. 이에 대법원은 일부 의견을 받아들여 2009년 1월 대법원 예규에 반영, △반대의 성으로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할 것 △병역 의무를 이행했거나 면제 받았을 것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 등을 성별정정의 조건에서 제외시켰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이 성별정정 신청 서류 목록에서 ‘부모 동의서’를 제외시킨 것도 의미 있는 개정이다. 부모 동의서는 신청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대법원 예규에 따르면 성별정정 신청인은 성인이어야 하는데, 성인에게 부모 동의서를 요구한 것이 모순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트랜스젠더 45.7%가 부모의 동의서로 성별정정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2018년 7월 인천가정법원은 부모의 동의가 성별정정에 필수가 아니라며 트랜스젠더 여성 A씨의 성별정정을 허가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법원 예규는 여전히 문턱이 놓아 프랜스젠더들은 개별적으로 법정에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A씨의 소송을 대리했던 박 변호사는 “이미 2013년과 2017년 이후로 외부성기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남녀의 성별정정을 허가한 판례가 쌓이고 있다”며 “예규가 판례를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을 인식하고 국회와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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