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은 최고 영예인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거머쥐면서 각본상, 국제장편상 등 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대미를 장식한 작품상 수상에서 그간 국내에서조차 공식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던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단상에 올랐다. 영화계에선 그녀의 노력, 즉 CJ그룹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부회장은 시상식장에서 “기생충을 지지하고 사랑한 모든 사람에 감사한다”며 “내 남동생 이재현(CJ그룹 회장)에게도 감사하다”고 자신의 동생에게도 소감을 전했다. 이 부회장은 기생충의 결과가 지난 25년간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를 멈추지 않은 이 회장의 노고를 취하한 것이다.
업계에선 CJ가 기생충의 수상을 위해 아카데미 시상식 장외 전쟁에 “100억+α”를 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상식 전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 8,000여명 투표를 통해 후보작 및 수상작을 선정하기 때문에 대대적인 홍보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앞장서서 진두지휘 한 이가 이 부회장이다.
CJ그룹 측은 “지난 25년의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가 헛되지 않았다”며 최근 이재현 CJ회장이 CJ ENM 업무 보고 때 한 말을 되새기고 있는 분위기다.
CJ는 지난 1997년 ‘인샬라’ 이후 지금까지 300편이 넘는 한국 영화에 투자해 왔다. 국내에는 생소하던 ‘투자 배급사’로 한국 영화 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동안 문화 산업에 투자한 누적 금액만 따져도 7조5,000억원이 넘는다는 게 CJ측의 설명이다.
CJ와 봉준호 감독의 인연도 남다르다. 주목 받은 봉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 ‘마더’ ‘설국열차’ 그리고 '기생충'까지 모두 CJ가 투자 배급을 받았다. 4000만달러(약 475억원)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설국열차'는 촬영을 앞두고 해외투자 유치가 어렵자, 이 회장이 제작비 전액을 책임지기로 하고 제작 지원에 나섰던 일화도 있다.
영화계에선 “CJ 두 남매의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이 없었다면 사실상 이 같은 쾌거를 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적자를 감수하면서 문화 산업을 고집한 남매의 뚝심 경영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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