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사립유치원 파동 이후 정부가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으로 ‘매입형 유치원’ 개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학부모 수요가 많은 지역의 사립유치원을 국공립으로 전환한 사례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매입형 유치원의 경우 통학버스 운행을 중단하거나 신규 원아는 방과후 과정반 모집에서 제외해 보여주기식 행정이란 지적이 잇따른다.
11일 본보가 서울시교육청·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을 통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 등을 취합한 결과에 따르면 내달 개원 예정인 매입형 유치원들 가운데 서울 송파, 강서, 강남, 경기 성남시 등 실제 유치원 취학 아동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에 자리하는 경우는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서울 은평(3곳)·도봉(2곳) 등 비교적 유치원 취학 아동수가 적은 지역에 매입형 유치원이 들어선다.
매입형 유치원은 각 시도교육청이 사립유치원 부지와 건물을 사들여 국공립으로 전환한 기관을 말한다. 유치원을 새로 짓는 것보다 예산이 적게 들고 시간이 단축돼 국공립 취원율을 높이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혔다. 교육부는 지난해 27.9%수준인 국공립 취원율을 2021년까지 40%까지 올리겠다며 올해 초 매입형 유치원 34개 개원 계획을 밝혔다.
당장 3월 각 시도교육청이 개원 예정인 매입형 유치원은 전국 20여곳에 이른다. △서울 9개(은평 3개, 도봉·노원 각 2개, 서초·관악 각 1개) △경기 14개(용인 3개, 평택 2개, 수원·군포·의왕·화성·광주·안성·고양·오산·남양주 각 1개) △부산 3개(북구 2개, 사상 1개) △울산 1개(북구) △광주 1개(북구) 등이다. 서울의 매입형 유치원 경우 이달 말 시의회 공유재산관리계획 재심을 통해 개원이 최종 확정된다.
문제는 정부가 매입한 사립유치원 중 실수요가 많은 지역 유치원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통계청 2014년 출생자 인구조사를 기준으로 올해 유치원에 입학하는 만 5세는 서울의 경우 △송파구(6,001명) △강서구(5,424명) △노원구(4,715명) △강남구(4,654명) △구로구(4,279명) 순으로 많지만 이 중 매입형 유치원 개원 예정 지역은 노원구뿐이다. 반면 실수요가 적은 은평구와 도봉구에는 각각 세 군데, 두 군데 매입형 유치원이 들어선다. 은평구과 도봉구는 2014년 출생자 숫자가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각각 8번째(4,085명), 19번째(2,553명)에 그친다.
사정은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만 5세 유아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원시(1만1,628명)에 3월 개원하는 매입형 유치원은 딱 한 군데다. 만 5세가 5,000명 이상 밀집한 성남시 부천시 안산시 안양시에는 3월 개원하는 매입형 유치원이 아예 없다. 반면 매입형 유치원이 들어서는 의왕시(1,427명) 안성시(1,612명) 등은 만 5세 유아 수가 2,000명이 안 된다.
부산 역시 해운대구(3,092명) 부산진구(3,027명) 등에서 2014년생이 많이 태어났지만 매입형 유치원은 북구(2,396명)에 문을 열고, 광주도 광산구(4,236명)가 아닌 북구(3,707명)에, 울산도 남구(3,189명) 동구(2,304명)가 아닌 북구(2,103명)에 매입형 유치원이 들어선다.
운영상의 한계도 지적된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매입형 유치원으로 전환한 9개 모두 통학버스 운영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관계자는 “기존 시교육청이 운영하는 공립유치원이 통학버스를 운행하지 않아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라고 말했다. 일부 매입형 유치원의 경우 기존 재학생만을 대상으로 방과후 과정반을 모집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실수요가 적은 곳에 매입형 유치원을 개원하는 이유에 대해 교육당국은 현실상의 어려움을 꼽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이 먼저 교육청에 매도 의사를 밝혀야 평가기준에 맞춰 검증할 수 있다. 매입 신청자를 대상으로 하는데다 지역별 균형, 원아 수, 경영 건전성 등을 따져 (실수요 지역에 매입형 유치원을 개원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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