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다녀왔다고, 기침한다고…
폐쇄 우려한 일부 병원들 진료거부 잇달아
“中 왕복비행 이유로 치과 진료거부”
“보건소 확인서 받아도 소용없어”
직장인 김모(33)씨는 이달 초 마른 기침이 지속돼 서울 강남구의 한 내과를 찾았지만 진료를 거부 당했다. 병원에선 “엑스레이(X-ray)가 없어 검사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댔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해당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데다 중국을 다녀온 적 없는 김씨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탓에 의료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긴 하지만 의심 정황이 없는 환자는 꼼꼼히 돌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진료를 받지 못해 몇 주째 끙끙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일부 병원의 진료 거부로 이어지며 애꿎은 환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해외를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기침 등 신종 코로나 유사 증상을 보인다는 이유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직업상 해외 방문이 불가피한 승무원들이 대표적이다.
1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일부 병원들은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 시스템의 해외여행력 정보제공 전용 프로그램(ITS)을 통해 승무원들의 해외방문력을 확인한 뒤 무작정 진료를 거부하고 있다. 한 국내 항공사의 승무원은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익명게시판에 “(호흡기 질환과 상관 없는) 정형외과에 가려고 병원에 문의 전화를 했는데 진료를 거절했다”라며 “승무원인 게 죄인가”라고 적었다. 다른 승무원은 “중국 퀵턴(당일 왕복비행)을 다녀왔을 뿐인데 치과에서 진료 거부를 당했다”고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중국 등 해외 국가 방문자가 신종 코로나와 관련 없는 질환으로 내원하면 일상 진료를 하라는 지침을 의료기관에 내려 보냈다. 환자를 보건소로 보내야 하는 경우는 ‘신종 코로나로 의심되는 특정 증세를 보일 때’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선별진료소에 방문해 의심 환자가 아니라는 확인서까지 받아도 진료를 받지 못한다. 병원들은 무증상이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확진 판정을 받아 병원 실명이 입길에 오르고 운영 중단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한 승무원은 “일반 병원 진료가 가능하다는 진단서를 보건소에서 발급 받았지만 확진자가 나오면 폐쇄해야 하기 때문에 진료를 볼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답답해했다.
국내 한 항공사 관계자는 “승무원들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데, 병원에서 이런 식으로 기피하면 아무도 중국행 비행기를 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반 환자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설 연휴에 중국 장가계로 여행을 다녀 온 A(60)씨는 신종 코로나 의심 증상이 전혀 없었으나 지난달 말 부산의 한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거부당했다. 문진 중 장가계 방문 사실을 알리자 병원 측은 처방전만 쥐어주고 귀가시켰다. A씨는 “수면제를 처방 받으러 다른 병원을 찾았는데 중국 방문 기록이 전산 시스템에 입력돼 이번엔 의사도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진료 거부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법 15조에 따르면 의료인이 진료 거부 금지의무를 위반할 경우 해당 의료인 및 의료기관 개설자는 1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증상이 없다가 나중에 확진을 받는 경우가 있어 해외여행력이 있는 환자 대응에 애로를 겪는 병원이 있는 것 같다”며 “향후 현장 점검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김영훈 기자 h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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