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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리원량이 남기고 간 것

입력
2020.02.10 18:00
수정
2020.02.11 18: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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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 중앙병원 앞 임시 추모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처음 알린 의사 리원량의 명복을 비는 사진과 꽃다발이 놓여 있다. 우한=AFP연합뉴스
지난 7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 중앙병원 앞 임시 추모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처음 알린 의사 리원량의 명복을 비는 사진과 꽃다발이 놓여 있다. 우한=AFP연합뉴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발병 때 중국에서 맹활약한 의사로 중난산(鍾南山)과 장옌융(蔣彦永)을 꼽는다. 발병지인 광둥(廣東)성에서 호흡기질환연구소장으로 근무 중이던 중난산은 이 신종 코로나의 실체를 공개하고 ‘사스’라는 이름까지 붙인 인물이다.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며 중증 환자를 “내게 보내라”고 해서 영웅으로 칭송된다. 베이징 해방군 301병원 교수였던 장옌융은 사태 축소에 급급하던 정부에 반기를 들어 실태를 언론에 처음 알려 방역 지휘부를 재정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그들과 견줄 만한 영웅으로 신종 코로나에 감염돼 결국 숨지고 만 우한(武漢) 중앙병원 의사 리원량(李文亮)이 거론된다. 안과 전문의였던 그는 지난해 12월 30일 아는 의사들이 참여한 채팅방에 “7명이 사스에 걸려 우리 병원에 격리돼 있다”고 썼다. 중국 당국은 이미 신종 폐렴 환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공지해 놓고도 나흘 뒤 그를 불러 밤샘 조사한 뒤 “괴담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징계했다. 한 달 뒤 리원량은 중국 국영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건전한 사회라면 목소리가 하나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신종 코로나가 전파력은 강하지만 치사율이 낮다는 것은 중국 외 지역 감염 사례가 늘고 있음에도 사망자가 거의 없고, 중증환자가 적다는 데서도 나타난다. 우한을 중심으로 확진자 4만명, 사망자 900명을 넘어선 것은 전적으로 방역 책임이 있는 보건 당국의 대응 실패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 당국 사이에서는 그 책임을 우한시나 후베이성 등 지방정부가 져야 하는지, 시진핑 주석을 필두로 하는 중앙정부가 져야 하는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는 모양이나 한가한 소리다.

□ 초기 대응이 늦었던 우한시의 책임은 당연하나 궁극적으로 시진핑 정권의 책임이 무겁다. 중국 당국은 리원량을 단죄한 것도 모자라 지금도 현장에서 이런 고발을 이어가는 기자들을 잡아가고 있다. 시진핑 집권 이후 더욱 강화된 중국의 언론통제가 낳은 감염병보다 무서운 비극이다. 중국의 한 대학 강사가 리원량을 추모해 썼다는 글의 마지막 문장은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말했습니다(他爲蒼生說過話)’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도 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얼마 뒤 중국에서 또 다른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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