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74년 2월 17일 새벽, 미 백악관 상공에 미 육군 UH-1 이로쿼이(일명 휴이) 헬기 한대가 나타났다. 백악관 전용기를 제외한 일반 항공기의 비행이 통제된 구역이었고, 사전에 보고된 바도 없는 출현이었다. 백악관 경비부대의 집중 포화 속에 헬기는 본관 남쪽 약 90m 지점에 착륙했고, 조종사는 경미한 다리 총상을 입었을 뿐 무사했다. 백악관 경비당국으로선 초유의 재앙이었다. 범인은 미 육군 항공대 소속 헬기 정비병인 일병 로버트 프레스턴(Robert K. Preston, 1953~2009)이었다.
플로리다 파나마시티 출신의 프레스턴은 고교시절부터 군인, 특히 전투 헬기 조종사를 동경했다고 한다. 그는 고교 졸업 직후인 1972년 미 육군에 입대했다. 하루빨리 베트남 전선에서 전투 헬기를 몰고 싶던 그의 꿈은 24주 훈련과정을 거치며 좌절됐다. 군 기록에 따르면 그는 기계 조작 능력이 부족했다. 군 당국은 만 4년 복무 계약에 따라 그를 1974년 1월 메릴랜드주 포드 미드의 헬기 정비병으로 배속시켰다. 만 스무 살의 그는 당시 부대 지휘관의 평가에 따르면 “규정을 준수하는 조용한 병사”였지만 그에겐 규정보다 ‘꿈’이 소중했다.
그가 단지 비행 충동을 못 이겨서 그랬는지, 자신의 비행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그랬는지는 불확실하다. 어쨌건 그는 당일 새벽 연료를 가득 채운 채 대기 중이던 휴이에 올라 비상등도 켜지 않고 이륙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주 경찰 헬기 2대의 추적을 따돌리며 그는 워싱턴D.C까지 날아 링컨기념관 등을 끼고 선회비행을 감행했고, 포화를 피해 백악관 남쪽 뜰에 무사히 착륙했다. 2001년 9ㆍ11 사태 이전까지 워싱턴D.C 권역에는 지대공 미사일 같은 대공 방어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가 탈취한 헬기는 다음 날 별도 정비 없이 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한 상태였다. 당시 닉슨 대통령과 퍼스터레이디 패트는 백악관에 없었다.
프레스턴은 1년 징역형과 2,400달러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알려진 바 그는 출옥 후 워싱턴주에 정착, 1982년 결혼했다. 내내 잡역부로 다양한 일을 하며 입양한 두 딸 등 가족을 부양했고, 암으로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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