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소생산 수입 의존 계획
원전 활용, 대량 수소생산 가능
기간 종료된 원전서 수소생산을
70년대에 이어 80년대 초에 연거푸 경험한 2차 석유파동으로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2% 이상 낮아졌고, 물가 상승률이 30% 대에 이르러 서민의 생활을 위협했다. 당시 가수 윤모씨는 ‘나의 꿈이 출렁이는 바다 깊은 곳, 흑진주 빛을 잃고 숨어 있는 곳, 제 7광구 검은 진주…’로 시작되는 노래를 불러 히트 시킨다. 꿈은 비록 무산돼 산유국이 되지는 못했지만 에너지 분야의 선각자들은 80년대에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원자력발전을 통해 전기에너지만이라도 자립해 보자는 것. 수입에 대부분을 의존하는 LNG, 석유, 유연탄이 아닌 준 국산 핵연료를 연료삼아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을 국산화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지고, 기술보국의 이념 하에 젊은 인재들이 모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국내 원전 기술이 자립돼 2000년대 말 대형 원전과 연구용 원자로를 중동에 수출하는 쾌거가 일어났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준 값진 경험이었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걱정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꾼 선배들의 DNA가 후배들에게 유전되었음을 나타내는 징조 역시 나타나고 있다. 수소자동차가 운송수단과 함께 소형 발전소로 활용된다는 광고가 나오고 미국의 소비자 가전전시회에서 ‘미래도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의 홍보영상이 소개되는 등, 제조업의 경쟁력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2030년 국민 대다수가 수소차를 이용하게 되면 출퇴근 시간에는 운송수단으로 사용하고, 주차 시간에는 소형 전기공급장치 역할을 해 공장이나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기존의 탈것인 자동차가 수소를 연료로 하는 연료전지 기술과 만나 생활을 바꾸고 더 나아가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 지구의 온난화까지 늦출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수소차가 기존 내연기관이나 배터리를 탑재한 자동차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수소의 가격이 저렴하고 또한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소의 공급에 대한 정부의 전략은 너무도 수입 의존적이다. 정부는 수소경제 시대의 핵심인 수소 생산을 수입에 의존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두 번의 재앙과 같은 석유파동을 겪었던 우리로서는 외부 의존적인 수소 공급 망으로는 향후 수소경제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에너지 자립 없이 경제발전은 없다!’는 구호를 실천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 길은 수소 생산 자립을 통해 열릴 것이다. 2030년 수소 수요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면 큰 에너지 안보 리스크를 또다시 불러올 것이다. 당장 이란과 미국의 대치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공급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가?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미 물을 전기분해하면 수소가 나온다는 경험을 했다. 이 전기분해의 문제점은 낮은 효율이다. 즉, 들어가는 전기에너지에 비해 수소 생산량은 적어 경제성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물을 끓여 높은 온도의 증기로 만들고 이를 전기분해하면 효율이 훨씬 높아진다. 이때의 관건은 고온의 증기와 전기의 원활한 공급이다. 이 기술은 주요 선진국에서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독일에서는 이미 증기를 이용한 수소 생산설비 모듈을 소형화해 시판하고 있다. 다행한 것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과 시스템을 우리 역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는 가동이 정지된 국내 원전을 활용해 대량의 수소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많은 투자 없이도 인허가 기간이 종료된 원전을 수소생산 기지로 탈바꿈시킬 수 있어 비용대비 효과가 매우 높다. 뿐만 아니라 안전성이 크게 향상된 스마트 원전이 인허가를 완료해 건설 대기 상태에 있고, 수소를 아주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초고온 가스로’ 연구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런 원자력발전 기술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고, 남는 수소를 수출할 수 있다면 이는 21세기의 ‘검은 진주’가 돼 우리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창조산업,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구호에 머물지 말고 ‘투명한 진주’인 수소를 찾아 나서는 대열의 선두에 서야 하지 않을까? 손에 잡히는 기술만이 GDP 4만불을 넘어 5만불 시대를 우리에게 열어줄 것이다.
한국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 정재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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