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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대신 ‘워더링 하이츠’… “원작 최대한 살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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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대신 ‘워더링 하이츠’… “원작 최대한 살렸죠”

입력
2020.02.10 04:30
수정
2020.02.14 17:2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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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세계문학전집을 기획하고 있는 을유문화사 박화영(오른쪽), 최원호 편집부 과장이 전집 100권을 진열해놓은 서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을유세계문학전집을 기획하고 있는 을유문화사 박화영(오른쪽), 최원호 편집부 과장이 전집 100권을 진열해놓은 서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한국에서 세계문학전집 유행은 1959년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 출간으로 시작됐다. 1975년 ‘을유세계문학전집 100권 완간’ 기록은 세계문학전집 유행의 정점이었다. 먹고 살기 팍팍해도 이 땅의 부모님들은 아이들 책장을 세계문학전집으로 채워 넣었다.

이후 세계문학전집 시장은 내리막을 걸었다. 전집보다 단행본이 유행했고 1980,90년대엔 중고시장에 세계문학전집이 쏟아져 나왔다. 반전은 21세기에 시작됐다. 민음사, 문학동네 등 대형출판사들이 세계문학전집 출간을 본격화하면서 전집 시장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원조는 우리였는데, 다른 출판사들이 시장을 선점하면서 자존심이 상했죠. 이제 100권을 맞췄으니 저희도 면이 섭니다.”

최근 서울 망원동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박화영, 최원호 편집부 과장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2009년 세계문학전집 프로젝트를 재가동해 10여년 만인 이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로 100권째를 만들어냈느니 말이다.

밀려난 원조의 승부수는 ‘정통’이었다. 이미 종수로는 따라잡기 어렵다. 시장을 선도하는 민음사만 해도 360종 넘게 냈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면 제대로 만들어야 했다.

예전의 성공방정식이기도 했다. 1959년 을유세계문학전집이 나오게 된 계기도 당시에 이중번역이나 축약본이 많아서였다. 전집을 거실 장식품쯤으로 여기다 보니 권당 분량을 400쪽으로 규격화하는 ‘암묵적 관행’까지 있었다. 그때 을유세계문학전집은 ‘원저 분량을 고스란히 다 살린 완역본’이란 원칙을 고수했다. “돈만 생각했다면 절대로 못했을 일”이었지만 독자들은 이 원칙을 알아봐줬다.

‘돈보다는 책’이란 원칙은 60년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번역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 작가, 작품을 전공한 이에게 1차 번역을 맡기고 해당 언어권의 다른 번역자가 교차 점검을 한다. 완성도는 높으나 시간은 오래 걸린다.

이 자신감은 파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령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원제인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 그대로 출간했다. “‘폭풍의 언덕’이라 하면 히스클리프의 격정적 사랑이야기에만 초점이 가서 언덕을 둘러싼 두 가문의 비극적 일대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번역자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바꿨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낭만적 감성으로만 해석되는 걸 막기 위해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란 제목으로 나갔다.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작품의 간판 격인 제목이 낯설다 보니 같은 책인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판매 실적이 그리 좋은 건 아니다.

더구나 이번엔 ‘팔릴 것 같은 책’보다 ‘알리고픈 책’에도 집중했다. 러시아, 중남미, 아랍 등의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을 많이 넣었다. 초역 비중만 30%에 달한다.

그럼에도 도전은 계속된다. 묵직한 고전을 넘어 시, 에세이, 희곡, SF 미스터리 장르물로도 발전시켜나갈 생각이다. “수익이요? 걱정은 되지만, 좋은 책은 언젠가 된다는 믿음으로 밀고 나가보려고요. ‘책의 가치와는 타협하지 말자’가 저희 목표입니다.” 뒤처진 원조의 자부심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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