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째 ‘연중무휴’ 무료급식소부터
밤새 우한 입국자 찾는 보건소 직원
매일 실내 소독하는 택시 기사까지
지역 사회 지키기에 여념 없어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도 ‘나도 사람들을 돕고 싶어’라고 졸라 주말엔 같이 손 소독제를 만들어요.”
광주 서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서익환(44)씨가 손 소독제를 직접 만들어 약국을 찾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일. 광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6번 확진자가 발생하기 딱 이틀 전이다. 광주 지역사회에도 이미 마스크와 손 소독제 등 방역용품 품귀 현상이 빚어지던 시점이었다. 서씨는 8일 전화 통화에서 “손 소독제가 딱 하나 남았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가격표를 보고는 소독제를 다시 매대에 내려놓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서씨가 무료 제공하는 손 소독제는 60ml 용기로 하루 120~130개 정도. 에탄올과 글리세린 등 재료를 구하는데 드는 하루 2만원 가량의 비용은 둘째 치고라도, 손님이 뜸한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매일 1~2시간씩 꼬박 매달려야 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그래도 아내와 두 아이가 두 팔 벌려 응원한 덕분에 1,200개가 넘는 손 소독제를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서씨는 “품귀 현상에다 손 소독제 DIY(Do It Yourself, 직접제작) 열풍까지 불어 에탄올이 떨어져 가지만 가능한 데까지는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의 여전한 확산세로 전국의 지역 사회가 불안감에 휩싸여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작은 실천 하나로 지역사회의 막연한 공포와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발적인 상생의 노력이다. 광주에서 나눔을 시작한 약사 서씨는 “감염병의 가장 큰 문제는 공포와 불안감”이라며 “작은 소독제 하나가 누군가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인근 온누리계산약국의 전영옥(66) 약사도 어린 아이들이 약국에 들를 때마다 직접 제작한 소독제를 손에 쥐어 돌려보낸다. 성북구는 5번 확진자의 이동 경로에 있어 지난 5일부터 인근 유치원ㆍ초ㆍ중ㆍ고교 42곳이 일제 휴업에 들어갔다. 전씨는 “주변에 유치원이 많아 손 소독제를 나눠준 것일 뿐”이라며 “별 것도 아닌 일로 연락을 받아 부끄럽다”며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지역 경제가 신종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임대료를 낮춰 임대인과 상생의 끈을 놓지 않는 건물주도 등장했다. 전주 덕진구 첫마중길에 4층 건물을 소유한 은형주(49)씨가 주인공. 은씨는 건물 1층에서 부대찌개 음식점을 운영하는 세입자 김이분(63)씨의 임대료를 신종 코로나 사태가 사그라질 때까지 10% 인하하기로 했다.
최근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 중인 전주 역세권은 최근 신종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전방위 직격탄을 맞았다. 손님 발길이 뚝 끊기고 공실이 늘면서 건물을 소유한 임대인이나 세입자 모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은씨 소유 건물의 세입자도 4명으로 줄었지만, 은씨는 흔쾌히 월세를 내렸다. 은씨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앞으로 몇 개월은 간다고 하는데 특히 사람들로 붐비는 음식점은 타격이 심하다고 들었다”며 “얼마 안 되지만 조금이라도 짐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입자 김씨는 “(신종 코로나 때문에) 음식점을 연 2013년 이래 지금이 가장 힘들다”며 “누군가에게는 큰 금액이 아닐지라도 저에겐 너무나 큰 도움이 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저작권 한국일보]7일 서울의 한 무료급식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무료 급식을 일시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신지후 기자](http://newsimg.hankookilbo.com/2020/02/09/202002090487771603_15.jpg)
감염 위험으로 저소득층 노인과 노숙자를 위한 무료 급식소가 줄줄이 문을 닫는 데도 온정의 손길을 멈추지 않는 곳도 적지 않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에서 28년째 365일 연중무휴 무료 점심을 제공하는 사회복지원각은 신종 코로나 사태에도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강소윤 사회복지원각 총무는 “감염 확산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지난 주말에도 200명 넘는 어르신들이 찾아서 운영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7일 사회복지원각 급식소를 찾은 정호근(88)씨는 “요새 코로나 때문에 급식소가 다 문을 닫아 이곳도 그런지 와봤는데 문이 열려 있어 천만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요일을 잊은 채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시민들도 지역 사회를 지키는 숨은 영웅이다. 강동구에서 20년째 개인 택시를 모는 박동석(64)씨는 매일 아침마다 직접 만든 소독제로 차 시트를 깨끗이 청소한다. 서툰 글씨지만 ‘반갑습니다. 차 실내에 소독했습니다’는 안내문도 붙였다. 박씨는 “택시 소독은 매일 5분만 투자하면 되는 일이라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연로한 부모님을 병원으로 모시는 승객들의 감사 인사를 받을 때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지역 보건소에서 중국 입국자를 관리하는 직원들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다. 광진구 보건소의 한 감염관리담당 직원은 지난 일요일 밤 우한 입국자를 찾느라 벌인 소동을 떠올리면서 눈시울까지 붉혔다. 주소와 전화번호, 심지어 여권번호도 틀린 명단을 들고 경찰과 협력해 어렵사리 자가격리 대상자 한 명을 찾을 수 있었다는 직원은 “이미 자가격리 중이며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너무 반갑고 고마워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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