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재판 땐 치료 기회 잃을 수도” 재판부, 지난해 9월 조건부 보석
아내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60대 치매노인의 항소심 선고공판이 법원 재판정이 아닌 병원에서 진행된다. 거동이 불편한 피고인들을 위해 법원이 외부에서 공판을 진행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처벌보다 치료를 목적으로 보석을 허가하고 재판부가 병원을 방문해 선고하는 것은 처음이다.
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68)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을 오는 10일 경기 고양시 연세서울병원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이씨는 2018년 12월 아내 조모(사망 당시 65세)씨를 수 차례 때리고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심신상실(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상태)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징역 5년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이씨는 구치소에 면회 온 딸에게 “엄마(사망한 아내)와 왜 동행하지 않았느냐”고 꾸짖는 등 치매 증상을 보였다. 항소심 재판장인 정 부장판사는 “치료를 위해 구속을 풀어 치매전문병원에서 치료받도록 한 후 재판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며 지난해 9월 이씨를 보석으로 석방했다. 법원이 치매환자에게 ‘치료적 사법’ 목적으로 보석을 허가한 첫 사례다.
치료적 사법이란 1987년 미국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법원이 처벌 또는 사건 해결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치유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론에 근거한다. 보석 당시 정 부장판사는 “치매환자인 피고인에게 구속재판을 강요할 경우 치료 기회를 다시 얻기 어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씨의 보석조건으로 주거제한(공판기일 출석 외에는 병원 밖으로 일체 외출 금지) 및 자녀의 보고의무 등을 내걸었다. 재판부는 이씨를 석방하고 한 달이 지나 이씨가 입원한 연세서울병원을 방문해 점검회의를 가졌고, 이를 토대로 병원에서 선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해 재판을 받는 게 원칙이지만, 법원은 거동이 어려운 피고인 등 예외적인 경우 ‘찾아가는 재판’을 연다. 2014년에도 하반신 마비 피고인이 혐의를 자백하며 출장재판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혀 재판부가 피고인의 주거지로 직접 찾아가 선고공판을 연 적이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