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고소하는 민사소송 소장이 왔다. 이미 예고를 받았던 일이다. 세 들어 있는 사무실 건물을 포함한 지역 일대의 재건축이 확정되어 조만간 퇴거가 시작되는데, 기한 내에 퇴거를 마치면 소는 자동으로 취하된다고 한다. 간혹 퇴거기한 막바지에 부동산 소유자나 세입자가 나가지 않고 버텨서 재건축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방지하고자 퇴거 대상자들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소송을 건다는 문자를 재건축조합에서 보냈었다.
소송 대상자가 수천 명은 될 텐데 그 모든 비용을 감당하고라도 이런 식으로 하는 걸 보니 돌발 변수의 방지책으로는 그래도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용산 참사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거라면 납득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아무튼 낡은 사무실 건물의 철거가 시작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니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윌 스미스가 주연한 2004년 영화 ‘아이, 로봇’에는 건물 철거 로봇이 등장한다. 거대한 쇳덩어리 같은 모양으로 집 앞에 얌전히 대기하고 있다가 미리 설정해 둔 시간이 되면 깨어나서 무지막지한 팔을 휘두르며 사정없이 건물을 때려 부순다. 처음에 경고 방송을 하기는 하지만 일단 부수기 시작하면 안에 사람이 있는지는 살피지도 않고 가차없이 벽을 무너뜨린다. 주인공은 집 안에 있다가 아닌 밤중에 날벼락 맞는 꼴로 간신히 피해 나오는데, 누군가가 철거 로봇을 조작해서 주인공을 없애버리려 한 것이다.
이런 철거 로봇은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철거 대상 건물을 사전에 점검해서 완전히 비었음을 확인하겠지만, 예기치 않은 상황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다. 누군가 급한 볼일을 보러 살짝 들어갈 수도 있고 노숙자가 구석에서 잠자고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인명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이런 사고가 반복될 경우 어떤 판례가 기준으로 남을까?
SF로만 여겼던 일이 현실로 속속 들어오고 있음을 요즘 실감한다. 사무실 근처의 횡단보도에서는 노란 선을 밟으면 뒤로 물러나라는 경고 방송이 나온다. 움직일 때까지 방송이 멈추지 않는 걸 보면 AI가 센서와 연동되는 모양이다. 저녁 이후 어두워진 길을 가다 보면 전봇대 아래를 지날 때마다 쓰레기 무단 투기를 하지 말라는 경고 방송이 나온다. 자주 이용하는 길이면 오가는 길에 계속 듣게 되는데 좀 짜증이 날 정도이다.
엊그제는 위와 같은 사소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 있었다. 한 공중파 방송에서 ‘VR특집 휴먼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어린 딸을 먼저 하늘로 떠나 보낸 어머니가 가상현실로 들어가서 3차원 그래픽으로 구현된 딸을 만나 대화도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내용이었다.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찬반 논쟁이 치열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본 방송을 보고 난 이들의 댓글은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는 내용 일색이었다. 반대하는 의견도 꽤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보고 싶은 부모나 자식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혈육을 잃은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새로운 힐링의 가능성이 보이는 동시에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 노동을 대신하는 로봇을 포함한 포괄적인 기계세 도입에 대한 정책연구는 우리 국회에서도 진행 중이지만, 그와 함께 AI로봇이 개입될 여러 상황들에 대한 법적, 제도적 준비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속 철거로봇처럼 기득권층의 더러운 손 역할을 해서도 안 되고, 가상현실 접속 과정에서 개인정보 및 개인 콘텐츠의 저작권도 보호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 세대를 위해서라도 차근차근 착실하게 대비할 일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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