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문제는, 개인의 노동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 조직과 사회일 것이다. 노동자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너무 어렵게 만드는 환경일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빌라선샤인이라는 회사는 밀레니얼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를 만든다. 이곳에 오는 여성들은 보통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정도로, 회사에 속해 있든 프리랜서든 쉬는 중이든 일과 관련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더 일을 잘할 수 있는지는 물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잘 협업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커뮤니케이션 하기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는지 등 단지 노동자로서의 유능함을 갈고 닦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태도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며 답을 찾아보려 한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만큼이나 번아웃을 호소하거나 무언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것이 과연 개인 차원의 문제일까 생각한다.

얼마 전 벌어진 문학사상사의 이상문학상 관련 사태를 보며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1월 김금희 작가는 한 문학상 관련 계약서에 단편의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한다는 내용, 그 작품을 표제작으로도 쓸 수 없고 다른 단행본에 수록될 수도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음을 공개하며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문학상이 이상문학상이라는 사실은 곧 드러났고, 지난해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윤이형 작가는 부조리함 속에서 찜찜함을 안은 채로 글을 계속 써나가는 것이 치욕스럽고, 자신은 지쳤다고 밝히며 더는 작가나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 계속 부조리에 얽히게 됩니다. 성과를 기뻐하기는커녕 문제는 없는지 의심을 먼저 해야만 합니다. 저는 곡예를 하는 것처럼 마음 졸이고 두려워하면서 일을 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태인가요? 저는 더 이상 제가 무엇에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부조리에 범죄에, 권리 침해에 일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사건만이 문제는 아니다. 원고료를 지불하지 않고 문예지 정기구독권으로 대체하거나 원고료를 밝히지 않은 채 글을 청탁하는 일들은 너무나 흔하게 벌어진다. 작가가 노동한 결과는 글이지만 시스템 안에서 그 가치는 제대로 존중받지도, 보상받지도 못한다. 예술이니까, 문학계 사정이 어려우니까, 관행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남의 노동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진다.

문학사상사는 첫 번째 입장문에서 해당 사건이 직원의 실수로 벌어졌다고 해명했다. 계약서를 만들고 문학상을 조직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을 텐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을 텐데 한 명의 직원 뒤에 숨어서 상황이 무마되리라고 믿는 듯한 모습에 비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출판계에서 일하는, 작가가 아닌 사람들의 노동은 무엇인가. 출판사의 명예(라는 것이 있다면) 앞에서 일하는 개인들의 존엄은 그렇게 무시되어도 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요즘 밀레니얼 세대가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한다고, 해야 하는 일은 정작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는데도 회사 생활을 잘 견디지 못한다고, 끈기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가슴 뛰는 일을 하라’ ‘네 일을 하라’며 개인들을 부추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개인의 노동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 조직과 사회일 것이다. 노동자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너무 어렵게 만드는 환경일 것이다. ‘지쳤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약하거나 문제를 회피하는 게 아니라 부조리를 더는 견디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이상문학상 사태는 문학계의 일이지만 문학계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역시 노동하는 사람인 나 또한 알고 있다.

황효진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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