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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 낸 혁오 “파편처럼 사라지는 음악은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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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 낸 혁오 “파편처럼 사라지는 음악은 하기 싫다”

입력
2020.02.07 07:30
수정
2020.02.07 10:4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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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오. 사진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혁오. 사진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20, 22, 23, 24.

다음은 25나 26이 나올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사랑으로’라는 제목이 나왔다. 2014년 미니앨범(EP) ‘20’으로 데뷔해 어느새 7년 차 밴드가 된 혁오(오혁 임현제 임동건 이인우)가 지난달 30일 2년 만에 발표한 새 앨범 이야기다. 앨범 표지도 노상호 작가의 그림만 사용하더니 이번엔 처음으로 독일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의 사진을 썼다. 겉만 봐도 큰 변화다.

밴드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오혁은 6일 서면 인터뷰에서 “이전 앨범과 분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사랑으로’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됐다”며 “2년 전 틸만스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사진에 담긴 내러티브(서사)가 보였고 음악 작업을 할 때도 염두에 뒀다”고 설명했다.

혁오는 공식 발표 전 앨범을 소개하면서 장석주 시인의 산문집 ‘사랑에 대하여’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했다. “사랑은 알면 알수록 어렵고 복잡한, 그래서 이성으로는 풀 수 없는, 헤겔이 말한 바 ‘가장 괴이한 모순’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사랑은, 여전히, 유일하게, 모순과 부조리의 골짜기에서 신음하는 우리에게 손을 뻗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시인의 알쏭달쏭한 정의처럼 혁오도 앨범에서 매우 모호한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여섯 개의 수록 곡엔 모두 영어 제목이 붙었다. 가사 또한 ‘실버헤어 익스프레스(Silverhair Express)’ ‘플랫 도그'(Flat Dog)’를 제외한 네 곡 ‘헬프(Help)’ ‘헤이 선(Hey Sun)’ ‘월드 오브 더 포가튼(World Of the Forgotton)’ ‘뉴 본(New Born)’은 모두 영어로 쓰였다.

곡 제목만 봐선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처럼 보이지 않는데 가사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실버헤어 익스프레스’ 외엔 ‘사랑’이란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곳곳에서 사라짐 잊힘 어두움 끝 같은 표현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혁오 새 앨범 '사랑으로' 앨범 커버
혁오 새 앨범 '사랑으로' 앨범 커버

기타를 연주하는 임현제는 “가사로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고 음악의 흐름을 통해 삶의 태도로서 추구해야 할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오혁도 “사랑이라는 태도로 바라본 세상을 음악적으로 풀어냈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는 밝은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어두운 부분도 있을 텐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사랑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니까 사랑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우리 인간 아니냐는 얘기다.

혁오는 6곡을 27분짜리 한 곡처럼 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실제로 앨범에 담긴 여섯 곡은 조금씩 분위기가 다르지만 이질감 없이 연결된다. 간결한 구조가 반복되고 변형되면서 차근차근 쌓아가는 구성도 비슷하다.

보사노바, 사이키델릭 록과 슈게이징(몽환적 분위기 속에 일그러진 기타 연주가 특징인 얼터너티브 록의 하위 장르) 등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다. 후기 비틀스를 연상시키는 지점도 있다. 이전 앨범에 비해 대중성은 떨어지지만 음악적 완성도는 여전히 매우 뛰어나다.

새 앨범에 대해 혁오는 간결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너무 많은 설명과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주는 과함을 지양했다. 이번 앨범은 불필요한 요소들을 덜어내는 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간결함에 초점을 맞췄다. 간결한 좋음. 사운드 측면도 그렇고 가사도 같은 맥락에서 필요한 게 무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압축해서 얻어낸 필수적 요소로 구성했다.”(오혁)

악기 녹음은 지난해 영국 리얼월드 스튜디오에서 했고, 보컬 녹음과 믹싱은 독일 베를린에서 했다. 멤버들은 아날로그 악기의 소리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혁은 “특정 시대나 사운드를 구현하기보다 아날로그 질감을 지니면서 과거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현대의 방식으로 좀 더 깔끔한 질감을 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록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높은 혁오는 최근 들어 해외 공연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앨범 ‘24: 하우 투 파인드 트루 러브 앤드 해피니스’를 발표한 뒤 세계 23개 도시에서 공연한 이들은 8, 9일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다시 42개 도시 공연에 나선다. 오혁은 “아직 경험하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이 크다”고 했다. 다만 드러머 이인우는 개인 사정으로 올해 투어에 참여하지 않는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얼굴을 비친 독특한 신인 밴드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로 자리 잡는 사이, 이들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오혁은 “파편 같고 사라져 가는 음악을 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며 “간결하고 필요한 것만 담은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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