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공천 없이 당선 어려운 현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공천 파동
21대 총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요 정당의 공천관리위원회가 주목을 받고 있다. 공천 결과에 따라 선거 전체 판도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공천 작업은 신중하고 치밀하다.
인물보다 정당 위주의 투표 양상이 두드러진 우리 선거에서 정당의 공천장 획득 여부는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 때문에 선거 때마다 당 내에서 공천을 둘러싼 파열음이 나고 탈당과 단식, 폭력 사태가 벌어지는 등 홍역을 치러 왔다.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에게 공천 탈락은 곧 사형 선고와도 같다 보니 공천권을 쥔 공천관리위원장을 ‘저승사자’로 부르거나 ‘살생부’ ‘공천 학살’과 같은 자극적인 표현도 난무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천 파동의 역사를 사진과 함께 정리해 보았다.
#원조 저승사자의 등장
‘저승사자’라는 별명은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 공천관리위원장에 선임된 박재승 변호사가 원조다. 박 위원장은 당시 ‘비리 전력자 공천 배재’ 및 ‘호남 현역 30% 물갈이’를 공천 원칙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 물갈이 대상 의원 11명은 공천 심사조차 받지 못했고, 현역의원 24명이 탈락하는 ‘공천 피바람’이 불었다. 당시 현역의원들 입장에서 박 위원장은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였다.
이 과정에서 공천에 탈락한 설훈 전 의원은 당사 내 공천관리위원장의 방을 점거하고 국회의사당이 바라다보이는 창가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창 밖에서는 또 다른 공천 배제 인사와 지지자들이 연일 피켓을 들고 항의 집회를 이어갔다.
#공천 학살
18대 총선 당시 집권당이던 한나라당에서는 소위 ‘친박 공천학살’이 일어났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은 안강민 전 대검 중수부장이 맡았으나 실세는 친이(이명박)계의 핵심 이방호 사무총장이었다. 저승사자 옆에 ‘염라대왕의 대리인’ 이 앉아 있었던 셈이다.
청와대의 의중을 충실하게 받든 이 총장은 공천심의위원회를 무력화하며 친박(박근혜)계에 대한 공천을 철저히 배제했다. 이 과정에서 강재섭 대표가 항의의 뜻으로 당무를 거부하기도 했다. 결국 친박계 의원들은 탈당을 선택했다.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영남권은 무소속, 수도권은 친박연대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해 선전했다.
#줬다 뺏은 공천장
공천장을 줬다 뺏는 일도 있었다. 2012년 19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민주통합당은 전혜숙 의원(서울 광진 갑)에 대한 공천을 철회했다. 전 의원에 대한 금품수수 의혹이 일자 공천을 취소하고 김한길 전 의원을 해당 지역구에 공천한 것이다. 이에 전 의원은 국회 당 대표실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농성을 벌여야 했다. 그 후 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자신의 원 지역구 공천을 받아 당선에 성공했다.
#옥새 파동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40명에 달하는 ‘공천 살생부’의 존재를 인정했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배제할 비박계 의원 40명의 명단이 있었다는 ‘설’을 확인해 준 것이다. 당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선임은 청와대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였다. 공천 막바지까지 새누리당은 당 대표와 청와대의 갈등이 지속됐고 이른바 ‘진박 논란’까지 일었다. 결국 김 전 대표는 공관위의 공천자 선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 대표가 공천장 직인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향한 이른바 ‘옥새 파동’ 등 내환이 끊이지 않던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오래된 기억 속 난투극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엔 공천 결과에 불복한 현역의원이 당 사무총장을 주먹과 발길질로 난타하는 일도 있었다. 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 2월 공천에서 탈락한 한나라당 김호일 의원이 당무회의를 마치고 나온 하순봉 사무총장을 쫓아가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당시 하 총장은 공천 실무를 책임지고 있어 김 전 의원의 낙천 분풀이 대상이 됐다. 공천을 두고 벌어진 난투극 장면은 당시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에 의해 적나라하게 포착돼 한국 언론사의 명장면으로도 남게 됐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불출마를 선언한 원혜영 의원을, 자유한국당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공천관리위원장에 각각 선임했다. 각 당의 공천 결과에 따라 총선 대진표의 윤곽이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4월 15일, 선택을 앞둔 국민은 공천 과정 또한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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