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공포가 사람 거쳐 공간으로
지하철 1~8호선 승객 15% 감소… 출퇴근 자가용족 늘어 도로는 정체
“공항, 학교 등 특정 공간 감염 경로 및 방역 대책 상세히 알려줘야”
강원 원주시에 사는 직장인 이소은(31ㆍ가명)씨는 토요일인 8일 서울행을 포기했다. 원주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닌 동창 세 명과 서울에서 만나려고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일정을 뒤로 미뤘다. 빽빽하게 몰린 사람 틈바구니를 헤집고 서울 한복판을 다니는 게 덜컥 겁이 났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대도시 포비아(phobiaㆍ공포)’다. 이씨의 친구 김보라(31)씨는 “원주에 사는 친구 두 명이 신종 코로나로 서울에 오기 두렵다고 하더라”며 “마치 내가 ‘킹덤’에 사는 기분이었다”라며 난감해 했다. ‘킹덤’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좀비 바이러스’의 확산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불안은 전염성이 강하다”라며 “서울에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여럿 나오다 보니 대도시란 공간으로 불안이 옮겨간 것”이라고 말했다. 6일 기준 신종 코로나 확진자 23명 가운데 서울시민은 10명이다.
신종 코로나로 대도시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이 감소하는 등 공공장소 기피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확산세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사람을 거쳐 공간으로 옮겨갔다. 신종 코로나 장기화 우려가 커지면서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공간에 대한 불안 관리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
대도시 포비아의 불똥은 지하철로 튀었다.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설 연휴 직후인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지하철 1∼8호선 승객 수는 3,774만7,91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4,454만834명보다 680만여명이 줄었다. 약 15% 준 수치다. 많은 사람이 밀집된 좁은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와 섞이게 되면서 혹시 모를 감염을 걱정한 일부 시민들이 지하철 이용에 몸을 사리면서 승객 수가 준 것으로 풀이된다.
대신 도로 정체가 심해졌다. 서울교통정보센터 홈페이지에서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5일까지 출근 시간(오전 7~9시) 시내 속도를 확인해 평균을 계산해 보니 26.06㎞로, 전년 같은 기간 27.23㎞ 대비 1.17㎞가 느렸다. 신종 코로나 여파로 대중교통에서 대인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근 시간에 직접 차를 몰고 나온 시민이 많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날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 A씨는 “신종 코로나 이후 도로에 차가 부쩍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대도시 포비아는 시민의 생활 습관까지 바꿔놨다. 요즘엔 ‘어깨족’까지 등장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쓰는 출입구 문을 손이 아닌 어깨로 밀어 여는 시민이 부쩍 늘었다. 어떻게든 다중 접촉을 피해 보려는 안간힘이다. 김헌식 사회문화평론가는 “ ‘공항 포비아’ 등 공공 장소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는 건 공간 방역과 방역 후 위험도 여부에 대한 정보가 시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신종 코로나 장기화 가능성이 적지 않은 만큼 학교 등 특정 공간에서의 구체적인 방역 및 감염 경로를 상세히 알려주는 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