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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출사표의 품격

입력
2020.02.06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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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정의당 미래정치특별위원장(왼쪽)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같은 당 조혜민 여성본부장도 지난달 22일 정론관에서 경선에 출사표를 냈다. 정의당은 21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를 국민경선으로 선출한다. 뉴스1
장혜영 정의당 미래정치특별위원장(왼쪽)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같은 당 조혜민 여성본부장도 지난달 22일 정론관에서 경선에 출사표를 냈다. 정의당은 21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를 국민경선으로 선출한다. 뉴스1

정치인의 출사표는 살아온 길, 그 여정에서 길어 올린 열망이어야 한다. 그럴 때 ‘정치하는 이유’가 살아 꿈틀거린다. 그러나 현실은 출사표 표절 시비에 휘말린 의원이 있을 정도로 오염됐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4년 전 총선 출마선언문에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해답을 찾기 위해 매일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삶의 무게에 신음하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도전을 하고 싶다”는 등의 문구를 썼다가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을 베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설문 주요 대목의 단어만 바꾼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 정의당 비례대표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출사표에선 격이 다른 생명력이 느껴진다. 정의당은 국민경선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결정한다. 87년생 장혜영씨는 복지시설에서 나와 세상을 택한 중증 발달장애 동생과 함께 사는 자립기를 다큐 영화로 만든 청년이다. 그는 출마선언문에서 “우리 사회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지만, 그 밖에도 사람이 있다”며 “동생과 나는 운동장 밖에서 자란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는 혹시 운동장 밖 사람들을 희생해야 비로소 찾아오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분노하지 않는 정치를 바꾸기 위해 일할 기회를 달라”고 그는 호소한다.

□ ‘페미니스트 국회의원’을 선언한 후보도 있다. 젠더정치연구소와 정의당에서 경력을 다져온 90년생 조혜민씨. 그는 출사표에서 “나는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했고, 다른 피해자의 대리인이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피해의 경험은 자각의 밑천이 됐다. 그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덕분에 내 삶의 변화를 말할 수 있었고 삶의 무거운 과제를 정치의 몫으로 묻게 됐다”고 말한다. “여성에게도 국가가 있다는 걸 느끼도록 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이들의 삶 곳곳엔 ‘나는 왜 정치를 하려는가’를 되묻고, 스스로 답을 찾은 흔적이 또렷하다.

□ 이들의 반대 진영에도 미래가 있긴 하다.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으로 창당된 미래한국당. 이 당의 초기 구성원은 ‘원청 정당’인 자유한국당에서 파견한 의원들이다. 불출마 선언 의원들의 정치적 결단마저 한국당은 이렇게 활용한다. 하물며 이런 ‘하청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하겠다며 출마할 이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니 정치의 품격은 출사표에서부터 갈리는 것인지 모른다.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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