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는 직장인 김모(34)씨는 얼마 전 결혼을 했지만 당분간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다. 결혼을 하면서 신혼집과 살림을 장만하느라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탓에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월급만으로는 대출금 상환과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빠듯하다. 김씨는 “아이를 낳게 되면 아내가 직장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지금 당장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또 아이를 낳게 되면 육아 등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주위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어 아내와 상의해 출산 계획을 미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이모(37)씨는 아예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 가족들과 주위에서 결혼을 자꾸 권하지만 경제적 여유도 없고 지금의 생활도 만족하면서 결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씨는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모아 둔 돈이 많지 않아 결혼하게 되면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데, 집안 형편도 썩 좋지 않은 편이라 내키지 않는다”며 “혼자 자유롭게 생활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몇 년 전부터 결혼 생각은 아예 접었다”고 털어놨다.
제주지역에 1인 가구와 부부 가구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는 등 ‘아이 없는’ 가구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결혼 기피 현상과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을 꺼리는 가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6일 호남지방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지역 가구 수는 25만1,000가구에서 2047년 36만1,000가구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가구별로 보면 1인 가구가 지난해 7만5,000가구(29.9%)에서 2047년에는 13만2000가구(36.4%)로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또한 자녀가 있는 부부 가구의 비중은 2019년 6만5,000가구(25.9%)에서 2047년 4만5,000가구(12.5%)로 절반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자녀가 없는 부부 가구의 비중은 2019년 3만8,000가구(15.0%)에서 2047년 7만7,000가구(21.5%)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처럼 1인 가구와 자녀가 없는 부부 가구의 증가로 가구 수는 늘어도 평균 가구원 수는 지난해 2.49명에서 2047년 2.05명까지 오히려 내려갈 것으로 통계청은 내다봤다.
도내 1인 가구는 2000년 2만6,152가구에 불과했지만, 10여년 사이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도내 가구 규모 변화를 보면 1인 가구 비중은 2015년(26.5%)부터 1순위 가구 유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4인 가구는 2000년(27.1%)까지만 해도 가장 주된 가구 유형이었지만 지속적으로 비중이 줄어 2018년(15.6%)에는 4순위로 밀려났다.
도내 초혼 신혼부부의 평균 출생아 수는 2015년 0.91명에서 2016년 0.89명, 2017년 0.85명, 2018년 0.81명 등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자녀를 낳은 초혼 신혼부부의 비중도 2018년 62.9%로, 2015년 68.3%에 비해 5.4%포인트 하락했다.
이처럼 신혼부부의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경제적 이유가 주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 도내 신혼부부 가운데 금융권 가계대출 잔액이 있는 부부 비중은 2016년 80.2%에서 2018년 83.3%로 2.1%포인트 확대됐다. 특히 대출잔액별로 보면 5,000만원 미만의 빚을 보유한 신혼부부 비중이 2016년 59.4%에서 2018년 49.5%로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1억원 이상의 고액 빚을 보유한 경우는 31.2%에서 40.1%까지 확대됐다. 이는 최근 급등한 집값 부담 등으로 고액의 빚을 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신혼부부가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신혼부부 10쌍 중 8쌍은 경제적 부담을 안고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있고, 이는 출산율 하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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