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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체험하는 듯한 착각… ‘기생충 ’ 경쟁작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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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체험하는 듯한 착각… ‘기생충 ’ 경쟁작 ‘1917’

입력
2020.02.05 17:32
수정
2020.02.0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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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17'. 스마일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1917'. 스마일엔터테인먼트 제공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4월 6일. 독일군과 영국군이 대치하고 있는 프랑스 전선. 두 병사가 한가로이 자연을 즐기고 있다. 여유는 잠시. 둘은 갑작스레 호출되고, 장군의 긴급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 독일군이 철수해 예하 대대가 공격 태세에 들어갔는데, 독일군의 계략임을 알려야 한다는 명령이다. 두 병사 중 한 명의 형이 함정에 빠질 위험에 놓인 대대에 복무 중이다. 통신망이 끊긴 상황에서 1,600명의 목숨이 둘에게 달렸다. 두 병사는 급히 길을 떠나고, 갖은 난관과 마주한다.

영화 ‘1917’은 두 사람, 특히 스코필드(조지 맥케이) 일병의 시선으로 전쟁의 참상을 들여다 본다. 대다수 전쟁 영화가 그렇듯 팔이나 다리 잘린 부상병들의 비명이 가득하고, 시체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하지만 ‘1917’은 여느 전쟁 영화와 다르다. 전장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관객이 체험하도록 한다. 주인공이 포복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 카메라도 힘겹게 전진하며, 등장인물이 총알을 피하기 위해 몸을 숙일 때 카메라는 몸을 낮춘다.

영상은 전쟁의 실상을 하나라도 빼놓지 않겠다는 듯 끊김 없이 이어진다. 인물의 뒤를 따라갔다가 앞으로 가면서 공간을 360도로 보여주려 한다. 영화 속 장면은 연출된 게 아니라 액션캠으로 실시간 중계 되는 영상인 듯한 착각을 준다. 관객은 멱살을 잡혀 비좁은 참호로 끌려갔다가, 은폐물 없는 개활지에 던져진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찔한 순간이 이어지며 관객의 숨통을 죈다. 장면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 듯한 효과를 만들기 위해 제작진과 배우는 리허설만 4개월을 했다. 흔치 않은 촬영기법이 동원되고, 장면마다 섬세한 세공술이 돋보인다.

119분이라는 상영시간에 비해 이야기는 단출하다. 관객에게 애써 교훈을 전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임무 완수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스코필드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애와 전우애, 반전 등을 관객이 생각하도록 한다.

영화 '1917'. 스마일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1917'. 스마일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샘 멘데스 감독의 조부인 앨프리드 멘데스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멘데스 감독의 조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연락병으로 복무했을 때 목숨을 걸고 초소와 초소를 오가며 보고 느꼈던 점을 손자에게 전했다. 멘데스 감독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뼈대 삼아 허구를 보태고 영화를 완성했다.

‘1917’은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미술상 등을 두고 한국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등과 경쟁을 펼친다.

지난달 열린 제73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수상했고, 2일 열린 제72회 영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촬영상 등 7개 상을 받았다. 오스카 경쟁에서 한발 앞서 있다는 평이 많다. 인간애를 다룬 작품에 주목해온 오스카의 전통을 따졌을 때도 경쟁에서 유리하다.

멘데스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는 2000년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5개 부문 상을 받았다. 20년 만에 영광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19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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