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의 확산 여파가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박람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까지 번졌다. 오는 24~27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LG전자의 불참 선언, 중국 ZTE의 신제품 출시 행사 취소 등 주요 업체 이탈이 잇따르며 파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판 CES’로 불리는 ‘대한민국 혁신산업대전’ 개최가 무기한 연기됐다.
5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이날 “신종 코로나 확산에 따라 고객과 임직원 안전을 우선시해 MWC 2020 전시 참가를 취소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LG전자는 당초 박람회 기간 중 대형 전시 부스를 운영하면서 스마트폰 신제품 2종(V60씽큐, G9씽큐) 공개(언팩)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전략 제품 공개가 미뤄지고 전시장 사용 및 임직원 숙박ㆍ항공 계약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등 손해가 적지 않지만, 고객과 임직원을 중심에 두고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간 LG전자와 함께 부스를 꾸려온 LG유플러스도 자연스레 불참을 결정했다. 두 회사는 다만 글로벌 고객사와 약속한 현지 비즈니스 미팅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또 다른 국내 불참기업이 나올 기류도 감지된다. MWC에 처음 참가하며 기조연설까지 맡은 기아차는 내부적으로 참가 취소를 포함한 일정 변경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KT 역시 다른 업체의 동향을 보고 참가 여부를 최종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SK텔레콤은 예정대로 MWC에 참가하되 박정호 사장의 언론 간담회와 출입기자단 동행 취재 지원 계획을 취소하는 등 일정을 축소 조정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부스 운영 취소에 따라 최고경영자(CEO)인 하현회 부회장의 현지 출장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뿐만이 아니다. 이날 중국 대형업체 ZTE는 25일 개최하려던 미디어 컨퍼런스 행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ZTE는 이 행사에서 신형 5세대(5G) 통신장비와 스마트폰(Axon 10s 프로)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회사 측은 “항공 및 비자 발급 지연 등 실무적 문제가 있었다”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그보다는 신종 코로나 진원지인 중국에 대한 불안감을 의식한 결과라는 해석이 더 많다. 실제 ZTE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 환자가 전시회장인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 전역에 속속 발생하면서 불안은 더욱 가중되는 양상이다.
중국 기업의 일정 축소 움직임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MWC에 상당한 타격이 될 전망이다. MWC는 2018년부터 화웨이를 최대 후원사로 두고 있고, 대미 관계 악화로 미국에서 열리는 CES 참가를 꺼리는 중국 ICT 기업의 주력 행사로 자리매김해왔다. 지난해엔 전체 참가자 11만명 가운데 중국인 비중이 6%로 스페인 미국 영국에 이어 네 번째로 많았다. 신종 코로나 사태에도 중국 직항편 항공만 중단하며 비교적 느슨한 조치를 취해온 스페인이 보다 강도 높은 입국 통제에 나선다면 MWC 파행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
MWC 측도 대응에 나섰다. 주최기관인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4일 성명을 내고 “MWC 2020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로 선포했던 지난달 31일 비슷한 내용의 성명을 낸 지 나흘 만으로, 참가 기업의 추가적 이탈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편 산업부는 오는 17~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기로 했던 혁신산업대전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이날 밝혔다. 이 박람회는 정부가 CES, MWC 등 세계적 ICT 전시회를 본떠 지난해 처음 개최한 연례 행사로, 올해 행사는 전시 준비 부담과 신종 코로나 확산 위험 등을 호소하는 재계의 반대에 부딪쳐왔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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