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에는 첫째의 유치원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이라 해봐야, 겨우 유치원인데 괜한 호들갑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작은 꽃을 사고 졸업 소식을 SNS에 알리기도 했다. 예쁜 옷도 사서 입히고, 아침에는 머리도 평소보다 긴 시간 빗고 여며 묶어 주었다. 유치원의 졸업식은 아이 한 명. 딸의 여덟 살 동기들은 졸업을 유예하거나, 유치원에 늦게 입학했다. 딸이 다닌 그곳은 특수학교 유치원이다.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한 학교의 졸업식이 한날에 이루어졌다. 요즘 같아서는 불가능했겠지만 다행인지 무언지 코로나 바이러스가 엄습하기 전이라 체육관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입구에 선생님들이 마련한 따뜻한 차를 받아 들었다. 단연 막내인 우리 아이는 머리보다 큰 학사모를 비뚜름하게 쓰고 맨 앞줄 오른쪽 의자에 앉아 손장난 치며 노래를 부르다, 허공을 쳐다보다, 엄지손가락을 빨다, 다시 노래를 불렀다. 학사모를 쓴 모습이 귀여워 휴대전화로 사진 몇 장을 찍고 가만히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서서히 시선을 넓혔다. 아이의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치듯 보면 우리가 흔히 보던 장애인의 모습 그대로다.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몸을 꼬거나, 시선이 불안정하거나, 표정이 없어 보인다. 모르겠다, 이런 표현들이 맞는 것인지, 이렇게 멋대로 문장으로 써서 묘사랍시고 해도 되는 것인지. 첫째의 장애를 알기 전까지는 어리석게도 원래 사람은 두 다리로 서 있고, 몇 분 정도는 가만히 있을 수 있고, 눈동자와 표정을 관리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것을 ‘일반’으로 생각했고, 그렇지 않음을 ‘특수’한 것으로 여겼다. 특수한 것으로 여긴다는 건 관심이 없다는 뜻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모자란 인간됨을 고백하기에 그날 졸업식의 풍경은 꽤 적절했다. 졸업 축하 무대가 이어졌다. 초등부 아이들이 며칠 연습한 율동을 선보였다. 중등부 아이들의 합창도 멋졌다. 내 아이도 천천히 그러나 놀랍도록 자라서 저 무대에 오르겠지. 어느 날은 축하를 보내는 학생으로, 숱한 어느 날들을 지나친 그 어느 날에는 축하를 받는 졸업생으로. 졸업생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또박또박하고 정갈한 말이었다. 당연히 그러할 것인데, 거기에 놀라는 내가 더 우스울 정도로.
단상 아래에서 그 말의 시간을 함께 보낸 학부모가 보였다. 졸업식이 끝나면 더 이상 특수학교의 학부모일 수 없는 고등부 졸업생의 부모님이었다. 머리가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울고 있는 표정이어서, 눈이 마주칠까 봐 오래 쳐다보지 못했다. 특수학교의 학부모는 아이의 졸업이 별로 반갑지가 않다고 한다. 아이가 성인이 될수록 사회는 더욱 차가운 벽이 된다. 어디에 취업을 할 것인가, 어떻게 독립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사치스러울지도 모른다. 자라지 않는 아이와 내내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졸업식에 온 많은 이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우리 딸을 본다. 30분이 넘는 행사 시간을 용케 버티고 있다. 이를 가는 버릇은 여태 없어지지 않아, 바드득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녀석은 뭔가 불만이 있을 때 말을 하는 대신 이를 간다. 바드득, 나도 순간 이를 악물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삶은 어쩌면 이를 악물고 다시 웃고 하는 반복일지도 모른다. 이곳의 졸업식과 저곳의 졸업식 또한 그 반복 아래에서 다를 바 없다. 다른 게 있다면 다를 게 없도록 바꾸어 나가야 한다. 장애인의 아비가 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할 테니, 우리 딸을 포함해 졸업식의 아이들은 모두에게 아마도, 축복일 것이다.
서효인 시인ㆍ문학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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