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 체험해 보니…
배달ㆍ대리운전ㆍ가사돌봄서비스 등
법적 근로자 아닌 특수고용자로 분류
원하는 때 원하는 시간 일할 수 있지만
월 소득 200만원 넘기는 경우 드물어
산재 등 사회보험ㆍ노동3권 보장 안돼
지난달 30일 오후6시 기자는 전동 킥보드를 끌고 서울 서대문구 집을 나섰다. ‘배달의 민족 커넥트(이하 커넥트)’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커넥트는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고안해 낸 시스템이다. 누구나 본인 소유의 오토바이ㆍ자전거ㆍ킥보드 등의 운송 수단을 이용해 배달에 나설 수 있다. 원하는 시간만큼만 일할 수 있어 직장인들이 부업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현관문을 나서며 일주일 전 커넥트 교육장에서 받아 온 민트색 헬멧과 배지를 착용했다. 배민은 커넥트 희망자가 배달에 나서기 전 한 시간가량 교육을 실시한다. 이 교육을 통해 신규 배달기사들은 ‘배민 라이더스’ 애플리케이션(앱) 활용법과 배달료 책정방법, 복장ㆍ안전수칙 등을 숙지한다.
준비를 끝내고 앱을 켰다. ‘띵동’ 하는 배경음과 함께 ‘배달대기’ 알림이 전해졌다. 운이 좋았다. 집에서 불과 400m 떨어진 음식점(픽업지점)에서 음식을 받아 500m 거리에 있는 단지 내 아파트(전달지점)로 배달하면 되는, 이른바 ‘꿀콜’이었다. 잽싸게 앱 상단에 표시된 ‘배차요청’ 버튼을 눌렀다. 해당 배달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의사 표시다. 음식 픽업부터 전달까지 주어진 시간은 30분이었다.
배차가 확정되면 이동 중에 ‘조리요청’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음식점 주방은 이 신호를 기점으로 조리를 시작한다. 만약 배달기사가 이 버튼을 너무 빨리 누르면 음식이 전달지에 도착하기 전에 식어 버리고, 반대로 너무 늦게 누르면 배달이 지체된다.
기자의 집에서 픽업지가 멀지 않아 배차확정 후 곧바로 ‘조리요청’ 버튼을 눌렀다. 잠깐 길을 헤매느라 10여분 정도가 지나 음식점에 도착했다. 이미 포장된 음식이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주문번호, 전달지 주소, 가격을 확인했다. 주문이 여러 개 몰리는 경우 종종 배달사고가 나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꼼꼼히 주문내역을 확인해야 한다. 자칫 배달이 잘못되면 음식값을 배달기사가 물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음식을 받아 ‘배민 커넥트’ 로고가 새겨진 배달가방에 넣고 다시 킥보드에 올라탔다. 음식전달을 완료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24분이었다. 기자의 휴대폰에 ‘완료’ 알림이 떴다. 알림창을 열어보니 ‘4,500원’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배달료였다. 커넥트는 기본배달료(3,000원)에 거리할증(0.5㎞ 초과 시 통상 500m당 500원), 별도 프로모션 비용(통상 1,000원 안팎) 등을 더해 배달료를 책정한다. 배달대기부터 요청, 완료, 정산내역 확인까지 모든 업무가 앱을 통해 이뤄졌다. 이처럼 모바일 앱을 이용해 일감을 받는 유형의 일자리를 ‘플랫폼 노동’이라 부른다.
다시 휴대폰을 꺼내 앱을 열었다. 홍익대 인근 햄버거 가게에서 배달기사를 찾고 있었다. 거리는 출발지에서 픽업지점까지 1.5㎞, 픽업지에서 전달지점까지 1.8㎞라고 각각 표시됐다. 주어진 시간은 35분. 첫 번째 배달을 너무 쉽게 성공해서였을까. 이번에도 기자는 별다른 고민 없이 배차요청을 했다. 이날의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배민 앱에 나오는 거리는 직선거리를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동을 위해 지도앱을 켜자 출발지에서 픽업지까지 실제 거리가 3.2㎞로 계산됐다. 픽업지에서 전달지까지 거리도 2.7㎞. 도저히 시간 내에 배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직선거리를 기준으로 배달료를 지불하는 방침도 어딘가 불합리해 보였다. ‘배차취소’ 버튼을 누를까 잠시 고민했다. 순간 일주일 전 교육받은 내용이 머리를 스쳤다. 커넥트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차취소에 따른 불이익을 받는다. 동시배차(비슷한 지역의 음식점에서 동시에 배달요청이 들어오면 이를 한꺼번에 받아 각각의 주문자에게 전달하는 형태) 건수를 2건에서 1건으로 제한하는 식이다. 건당 배달료를 받는 업계 특성상 동시배차 제도를 잘 활용해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기자는 두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향후 동시배차도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이 때문에 어떻게든 배달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역시 무리였다. 골목길을 파고들어 픽업지점에 도착했으나 이미 음식이 나온 뒤 10분이나 지난 상태였다. 앱을 열어 ‘지연요청(주문자에게 음식이 늦게 도착한다고 알리는 절차)’을 누른 뒤 주문자에게 직접 전화까지 걸어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음식을 전달했을 땐 예정 시간보다 무려 25분이나 늦은 상태였다.
한숨 돌리며 다음 배달지를 확인하고 있을 때 민트색 오토바이를 탄 배달기사가 눈에 띄었다. ‘배민 라이더(이하 라이더)’였다. 라이더는 배민 커넥트와 사정이 좀 다르다. 배민으로부터 운송수단, 근태관리 등에서 좀더 직접적인 관리를 받는다. 이를테면 커넥트가 본인 소유의 운송수단을 이용해 배달하는 반면, 라이더는 하루 1만2,000원의 대여료를 내고 배민 소유의 오토바이를 빌려 배달에 나선다. 지난해까지는 중앙관리센터로부터 출퇴근 여부를 확인 받기도 했다. 노동시장의 표현으론 ‘전속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전업자가 주를 이룬다. 당연히 커넥터에 비해 근무시간이 길고, 월 평균수입도 많다. 이날 기자가 만난 라이더도 10시간 넘게 일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까지 총 47건을 배달했는데 이건 보통 수준”이라며 “60~70건씩 배달하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기자의 당일 배달 동선을 보여 주자 웃음과 함께 “이 정도 실력으론 아마 두 시간 내에 네 건 이상 못할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이 옳았다. 이날 기자는 두 시간 동안 총 4건의 배달을 완료했고, 불과 1만8,500원만 번 뒤 쓸쓸히 귀가했다. 제시간에 맞춰 한 건 배달하는 것도 급급해하는 초보자한테 동시배차란 턱없는 소리였다.
◇무제한 노동 가능하나 수입은 들쑥날쑥
커넥트는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 유형 중 하나일 뿐이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기존의 오토바이 음식배달뿐 아니라, 대리운전과 퀵서비스, 가사돌봄서비스 등도 대부분 플랫폼 노동 영역에 편입됐다. 예컨대 대리운전 기사들은 대리운전 업체 수십 곳이 등록된 통합 앱을 다운받은 뒤 이곳에 뜨는 배차(콜)를 선택한다. 가사돌봄 노동자들 역시 앱에 본인의 신상정보를 기재한 후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시간 단위로 일감을 소개받는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47만여명의 노동자가 플랫폼에 기반해 일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유형에 따라 근무 형태가 조금씩 다르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는 확실한 공통분모가 있다. 현행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근로계약이 아닌 위임 또는 도급계약을 맺고 일하는 개인사업자 형태의 근로 유형)’로 분류된다는 사실이다. 특수고용직은 사회보험과 노동3권(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 등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고정 급여가 정해져 있지 않아 연장근로수당, 퇴직금 등도 수령하지 못한다. 대신 ‘법정 근로시간’이라는 제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만큼 근무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대다수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사가 합의한 근무시간이 없어 자유롭게 출퇴근할 수 있다는 특성도 있다. 일하는 입장에선 장점과 단점이 혼재해 있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플랫폼 노동자의 대표적 유형인 배민라이더스 기사들은 “의지만 있다면 특수고용직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1년간 배민라이더로 일한 이모(22)씨는 “보통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시에 퇴근하고, 주 6일 일한다”며 “한 달 순수입은 350만원 안팎”이라고 밝혔다. 진입 장벽이 낮은 직종 중 이만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분야는 그리 많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대리운전 분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10년간 대리운전기사로 일했다는 백모(55)씨는 “오후 6시에 출근해서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오전 7시쯤으로, 노력 여하에 따라 돈을 벌 수 있다”며 “늦게 나오거나 출근을 안 해도 특별한 간섭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역으로 ‘수입이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대리기사 이모(51)씨는 “직장인들은 몸이 안 좋아 하루 쉬어도 월급에 차이가 없지만, 대리기사는 5만~10만원 정도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고정 급여가 따로 없다 보니, 조금만 일을 덜 해도 ‘수입 급감’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그는 “몸 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으면 거르지 않고 일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근로시간 무제한’으로 기대되는 고수익은 사실 극소수 노동자들의 얘기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배민라이더 박모(43)씨는 “배민은 라이더가 노력만 하면 월 600만원 이상의 수입도 올릴 수 있다고 홍보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고수’로 불리는 이들에게만 해당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배민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만이 월평균 632만원을 벌었고, 전체 라이더들의 월평균 수입은 423만원에 그쳤다. 현장 라이더들은 이마저도 ‘숫자에 불과한 통계’라고 입을 모았다. 스스로를 “월 400여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전형적인 평균 라이더”라고 소개한 박씨는 “오토바이 리스비, 정비비, 운전자보험을 합쳐서 일주일에 8만3,000원이 나간다. 여기에 수수료, 유류비 등까지 더하면 보통 월수입 중 80만~100만원 정도가 빠져나가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300만원 전후”라고 밝혔다. 이어 “하루 10~12시간씩 주 6일 노동한 걸 감안하면 그리 많은 액수로 보긴 어렵지 않겠냐”며 “결국 근로시간에 제한이 없다는 건 딱히 장점이라기보단, 임금 근로자만큼의 월급을 보전해 주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움직이는 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운송 노동자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가사돌봄 직종은 종사자들이 바쁘게 움직여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7년째 가사돌봄 노동자로 일하는 이모(51)씨는 “20평대 집에서 4시간 일할 경우 통상 5만원을 받는데, 업체 수수료 17%를 떼면 시급 1만원이 약간 넘는 수준”이라며 “아무리 시간을 쪼개 움직여도 하루에 두 가정 이상 방문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플랫폼 노동의 장점으로 여겨지는 ‘근무시간 무제한’에도 불구, 대다수 노동자들은 수익을 늘리는 데 어느 정도 한계를 느끼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노동실태는 지난해 11월 사단법인 참세상이 공개한 ‘플랫폼 노동 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들의 월평균 소득은 △대리운전 160만원(하루 평균 근무시간 9.35시간) △퀵서비스 166만5,000원(9.11시간) △음식 배달 175만1,000원(7.58시간) △택배 129만원(7.45시간) △가사돌봄 119만6,000원(6.12시간) 등이었다.
◇산재ㆍ고용보험 가입 10% 안전 사각지대
이처럼 ‘근로시간 무제한’ ‘유연근무’ 등의 장점은 상쇄될 여지가 큰 반면, 특수고용직의 태생적 단점은 도드라진다. 사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참세상에 따르면 업무상 상해를 입고도 ‘자비 치료를 한 경험이 있다’는 비율이 △대리운전 59.3% △퀵서비스 64.0% △음식배달 45.1% △가사돌봄 13.1%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2007년 산재보상보험법을 개정, 특수고용직 9개 직종(퀵서비스ㆍ택배ㆍ대리운전ㆍ골프장 캐디 등) 종사자들이 산재보험을 적용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의무가입 사항이 아닌 데다 보험료도 업체와 50%씩 나눠서 부담(임금근로자는 사업주가 100% 납부)하도록 해 가입률은 지극히 낮은 실정이다. 지난해 5월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서비스연맹)이 실시한 ‘플랫폼 노동 실태분석’ 결과를 보면, 직종별 산재보험 가입률은 △대리운전 7.1% △퀵서비스 19.9% △배달서비스 15.2%에 불과했다. 가사돌봄서비스 업종은 아예 보험가입조차 할 수 없다.
자율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고용보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비스연맹에 따르면 고용보험에 가입한 플랫폼 노동자 비율은 △대리운전 9.5% △퀵서비스 5.5% △배달서비스 8.8% 수준이었다. 직장가입자(사업주와 근로자가 보험료를 각각 절반씩 부담)와 달리 플랫폼 노동자는 본인이 보험료를 100% 내야 하므로 경제적 부담이 큰 탓이다. 결국 플랫폼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도 없이 생업 전선으로 뛰어들고 있는 셈이다.
◇플랫폼 노동자 근로기준법 해석은 엄격
그러나 근로자성을 매우 엄격하게 판단하던 사회 분위기에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생기고 있다. 지난해 11월 부산지법 동부지원의 대리운전 기사 관련 판결이 대표적 사례다. 2018년 ‘부산대리운전산업 노동조합’을 설립한 대리기사들이 업체 두 곳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자, 해당 업체들은 “대리기사는 독립적으로 영업하는 사업자일 뿐 노동자가 아니다”라면서 이에 반대하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의 결론은 “대리기사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해당 조합원들의 경우 △업체가 제공하는 앱을 통해서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업체에서 받은 대리운전비를 주된 소득원으로 하며 △복장과 교육 등과 관련해 업체의 지휘ㆍ감독을 받는다는 점이 주된 근거가 됐다.
비슷한 시기 고용노동부도 배달플랫폼 ‘요기요’를 통해 일감을 받는 라이더들과 관련해 △업체로부터 시급을 지급받았고 △카카오톡 등으로 출근 여부를 보고한 점 등을 들어 근로자로 판단했다. 아울러 노동 3권 중 단결권이 인정된 사례도 나왔다. 배달기사들이 모인 ‘라이더유니온’이 지난해 11월 서울시에 낸 노조설립 인가 신청이 승인된 것이다. 배달 플랫폼 업계에서 첫 합법 노조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이들 사례만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이 ‘법률상 근로자’라고 온전히 인정됐다고 볼 수는 없다. 김기덕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변호사는 “최근 사례는 노동조합법을 토대로 나온 판단”이라며 “노동조합법은 노조를 조직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할 수 있는지를 따지기 때문에 근로자에 대한 정의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반면 근로기준법은 특정사업장에 고용된 재직자만을 근로자로 본다. 때문에 향후 퇴직금ㆍ통상임금 등과 관련한 법적 분쟁을 거쳐야만 법률상 완전한 의미의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이더유니온의 설립이 향후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에 밑거름이 될지도 불투명하다. 엄밀히 말하면 라이더유니온은 현행법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설립됐기 때문이다. 현행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노조 결성 시 고용부와 관할관서에 신고해 인가를 받아야 한다. 다만 지방자치단체도 고용부의 권한을 위임 받아 관련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데, 라이더유니온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 노조설립 인가를 고용부가 아닌 서울시에 신청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그 당시 “고용부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하면 반려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서울시에 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전국대리운전노조는 2012년 결성됐지만 고용부가 설립 신고를 받아주지 않아 지금까지도 법외노조 상태에 머물러 있다. 바꿔 말하면 현재로선 노조 설립의 구조적인 토양이 마련됐다기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량에 따라 설립 가능 여부가 결정되는 셈이다.
설사 단결권(합법노조)을 인정받았다고 해도 단체교섭ㆍ단체행동권이 자연스럽게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교섭 상대가 불명확한 탓이다. 예를 들어 배달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주문자, 식당, 플랫폼 업체 중 누구를 사용자로 보고 단체교섭을 해야 할지 불분명하다. 또 노조가 파업 등 단체행동에 나서고 플랫폼 업체가 이에 대응해 대체인력을 투입할 경우,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결국 근로기준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업무내용 지정 △상당한 지휘ㆍ감독 △근무시간ㆍ장소에 대한 구속 등 사용자에 대한 종속성을 토대로 근로자 여부를 결정한다. 현장 노동자들은 이 같은 종속성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리운전 기사 현모(52)씨는 “모든 대리기사는 형식적으로라도 하나의 업체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명확하다. 수수료(수입의 20%)와 관리비(월평균 12만~15만원)를 내는 것도 사업장에 종속돼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대부분 업체가 업무상 지휘ㆍ감독권도 행사한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대리운전 기사는 업무 중 문제가 발생하면 3개월 단위로 배차 제한이 걸리거나 동선에 유리한 콜을 받지 못한다. 부업 성격이 강한 배민 커넥트마저도 필수착용 복장으로 △긴바지 △배민 배지 △운동화 등을 지정받고, 이를 어기면 △1차 경고 조치 △2차 재교육 △3차 재등록 불가 등의 페널티를 받는다. 김 변호사는 “플랫폼 업체는 노동자에게 특정 지역에서 특정 업무를 하라고 지시하고 이를 어기면 불이익을 주고 있다”며 “플랫폼이라는 형태만 빌릴 뿐 내용 면에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은 플랫폼 노동의 태동기인 만큼, 근로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시간을 두고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플랫폼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근로자 범위를 확대해 적용할지, 아니면 근로자와 자영업자 사이의 ‘제3의 노무제공자’로 정의할지에 대한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사분쟁 사건을 대리한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지금은 ‘플랫폼을 사용자 내지 사업주로 볼 수 있는지’ ‘복수 플랫폼에 노동을 제공한 경우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사용자 책임을 부담시킬 수 있는지’ 등의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라 충분한 의견수렴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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