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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입력
2020.02.05 04: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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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승무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스크를 쓴 승무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지난주 중국 우한 교민을 수송한 항공편에 대한항공 노조 간부들이 자원해 탑승하던 모습은 감동이었다. 정체 모를 감염병의 잠재 공간에 자진해 들어가는 건 누가 뭐래도 대단한 희생이자 용기다. 어느덧 잦은 질시 대상이 되어버린 대기업 노조에게, 일종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느끼게 하는 장면이어서 고개가 숙여졌다.

‘편히 쉬다 가세요’라는 팻말로 지친 우한 교민들을 맞은 아산, 진천 시민들의 마음 씀씀이도 감동이었다. 도착 전날 정부 발표에 트랙터로 길을 막아선 일부 지역민의 거부감도 한편으론 이해할 수 있지만, 난데없이 닥친 이웃의 고통을 기꺼이 나누겠다고 나선 아량은 그 어떤 치료제보다 국민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희생자 규모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을 넘어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여전히 확산 중인 단계여서 당장은 병이 얼마나 더 퍼질지에 온 관심이 집중돼 있다. 하지만 급속한 확산세가 한풀 꺾여도, 보이지 않는 공포에 심각하게 위축된 일상과 그로 인한 부작용은 올해 한국 경제 전반에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

사실 보이지 않는 공포로 치자면 우리는 진작부터 동시다발의 감염병을 앓는 사회다. 수년째 한반도의 겨울과 봄을 집어삼키고 있는 미세먼지는 또 다른 바이러스다. 원인이 불명확하고 해결법이 난망하며 건강을 해친다는 점에서 코로나 못지 않다. 원자력을 둘러싼 이념 대립 속에 이 땅의 원전 폐기물 저장시설은 하루하루 포화 시점에 다가가고 있다. 어디 수출할 곳도, 더는 지을 곳도 마땅치 않은 현실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공포다.

이제는 하도 자주 들어 무덤덤해진 고령화와 만성 저성장 문제는 상상 못할 갈등과 혐오를 양산할 것이다. 쪼그라드는 경제에 누가 재원을 대고 줄어든 파이를 누가 가질까 하는 문제는 정답 없는 극한 투쟁을 부를 게 뻔하다. 하나 같이 뾰족한 해결책은 없고, 모두가 피해자일 수 있으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 이미 사회 전체를 휘젓는 감염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막 코로나바이러스와 맞닥뜨린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당장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지역 사회에 행여 감염 요인이 침투할까 민감하게 반응한다. 감염자가 열흘 전 지나갔다는 영화관, 음식점도 일단 폐쇄할 것을 요구하고 마스크, 손세정제 사재기가 난무하는 천박함도 드러냈다. 유동인구가 사라지자 소상공인들은 벌써 생계 위기를 맞고 있다. 조만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악재들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다. 장차 닥칠 각종 사회적 감염병 창궐의 시대에는 한층 다양한 집단 이기주의가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왜 내가 세금을 더 내야 하나, 왜 나의 연금ㆍ수당이 깎여야 하나, 왜 내 차를 못 다니게 하나, 왜 우리 동네에 위험시설을 지어야 하나 같은, 익숙한 목소리들이 떠오른다. 이들은 선거마다, 집회마다 마이크 너머로, 심지어 테러의 형태로도 분출될 수 있다. 남의 사정은 나의 책임이 아니고, 어쨌든 나의 손해는 못 참겠다는 목소리. 각자 사정을 봐주다간 어느 하나 해결하지 못할, 하나같이 난감한 전염병 소견서이자 처방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얼마나 더 확산될지, 언제 상황이 종료될지 알 수 없다”고 대통령은 우려했다.

어떻게든 이번 사태는 지나가겠지만, 암울한 감염병의 시대는 정말로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힘을 모아 함께 오솔길을 헤쳐가느냐, 설사 비탈길을 굴러도 낙오자를 최소화하느냐는 온전히 우리에게 달렸다. 나부터 비행기에 오르는 희생, 어서 오시라고 품어주는 아량. 피할 수 없는 감염병의 시대를 견뎌내는 공동체 구성원의 자세가 아닐까.

김용식 경제부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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