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본조차 “이상한 점 많다” 고충… 국내 감염땐 지역 전파 심각 상황
정부, 진원지 中 입국만 집중하다… 12번 이어 또 제 3국 감염 ‘구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6번째 확진 환자(42)에 대해 4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질본)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저희가 판단해도 이상한 점이 많다”라고 털어놨다. 환자는 최근 태국 여행을 다녀왔지만 바이러스 진원지인 중국 우한을 방문한 적은 없고, 귀국 후 약 6일 뒤에야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현재로선 그가 어느 국가에서 감염 됐는지 조차 오리무중인 것이다. 태국에서, 혹은 국내에서 감염됐을 가능성마저 상존한다는 얘기이다. 만일 국내 감염으로 밝혀질 경우엔 사실상 감염원을 특정할 수 없는 지역전파 단계 진입의 사례로 볼 수 있어 상황이 심각해진다. 환자가 거주하는 광주시에선 확진 환자가 나온 적이 없어서다. 특히 이 환자가 고열로 21세기병원에 입원치료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 이 병원은 신종 코로나 관련해 의료진과 환자가 모두 봉쇄되는 첫 ‘코호트 격리’ 조치 대상이 됐다.
이날 질본과 광주시에 따르면 광주시 광산구에 거주하는 16번 환자는 태국 방콕과 파타야를 여행한 후 지난달 19일 오전 방콕 출발 제주항공을 타고 무안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환자는 설 명절 당일인 25일 저녁부터 오한과 발열을 느껴 27일 광주 21세기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고 다시 전남대병원으로 전원 됐다. 이곳에서 환자는 엑스레이와 피검사를 받았지만 별 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중국 방문 이력이 없어 귀가 조치됐다. 폐암으로 폐절제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는 16번 환자는 이날 폐렴약만 처방 받았다.
약을 먹은 후에도 관련 증상이 진정되지 않아 환자는 이튿날 21세기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3일 증세가 악화돼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그제야 신종 코로나 감염증을 의심한 전남대병원은 광주 보건환경연구원을 통해 검사를 진행했고 4일 오전 16번 환자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환자는 현재 전남대병원 음압격리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환자의 태국 여행 당시 정확한 동선과 귀국 후 증상이 나타나기 전후 10여일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조사가 진행 중이다. 특히 이 환자가 입원했던 21세기병원은 다른 환자 70~80명도 입원 중이었던 데다 의료진과 접촉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 파장이 커질 수 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때의 환자→의료진→병원 내 다른 환자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질본은 “즉각대응팀이 역학조사 중”이라고만 설명했다. 동선이 불분명한 탓에 현재 확인된 접촉자는 태국여행에 동행한 5명과 가족(남편ㆍ자녀 3명)뿐이다. 확진자의 자녀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임시 폐쇄됐고, 환자가 입원했던 21세기병원은 보건당국으로부터 의료진과 환자까지 봉쇄되는 ‘코호트 격리’ 조치됐다.
정부의 대책이 ‘오염지역’인 중국에만 집중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일로인 다른 아시아국가에 대한 대응체계에는 구멍이 뚫린 셈이다. 정부는 사태 초기부터 우한 입국자 검역을 강화했지만, 태국에 방문했던 16번 환자는 애초 특별검역 대상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입국했던 12번 환자(49ㆍ1일확진)가 검역에서 제외됐던 것과 마찬가지다. 정은경 본부장은 “16번 환자는 귀국 당시 증상도 없어서 특별검역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발병초기인 27일 병원 측이 보건당국에 연락해 검사를 문의했지만 중국에 다녀온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검사를 거부한 것으로 드러난 점도 허점으로 지적된다. 21세기병원과 전남대병원은 당일 각각 1339와 보건소에 연락해 신종 코로나 검사여부를 문의했으나 ‘중국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사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정부의 방역망을 중국 외 다른 지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보건당국은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국가들과 확진자ㆍ접촉자 정보를 공유하는 등 수시로 교류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4일까지 태국에서 넘어온 접촉자 명단에 16번 환자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공유보다 자체 검역 강화가 더 빠를 수 있는 상황이지만 당국은 이에 대해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다. 정 본부장은 “중국 이외의 국가들도 지역사회 유행이 광범위하게 되면 동일한 절차로 오염지역으로 지정한다”면서도 “현재 지정을 검토하는 나라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병율 차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태국 등 동남아 국가에 대한 입국선별ㆍ제한정책을 확대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며 “16번 환자와 여행에 동행한 접촉자들의 감염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세종=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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