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소비자 보호’를 명분 삼아 통상 ‘업자’ 중심으로 돌아가던 금융권에서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법률상 한계를 이유로 10년 넘게 방치되던 키코(KIKO) 사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결국 은행이 배상에 나서게 한 것도, 대부분 기관 징계로 마무리되던 금융상품 판매 관련 사고를 최고경영자(CEO) 책임으로 전환시킨 것도 윤 원장이다.
이는 금융사 CEO의 감독자이자 동시에 대표자처럼 활동하던 이전 금감원장에겐 찾아볼 수 없던 면모다. 금융권 안팎에선 그의 소신과 뚝심을 평가하는 목소리와 함께, 스스로 금융사 ‘감독’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허물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소비자보호 강공 드라이브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원장이 취임 후 꾸준히 금융권에 ‘소비자 보호’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을 분리해야 한다는 학자 시절부터의 소신과도 맥을 같이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원장의 소신이 관철된 대표 사례가 키코 사태다. 윤 원장은 “은행이 위험을 알면서도 수출기업에게 위험을 피할 기회를 주지 않고 파생 계약을 맺었다”고 평소 키코 사태를 사실상 금융사기에 가까운 사건으로 정의해왔다. 이에 앞서 2017년 금융행정혁신위원장 시절에도 금융위원회에 키코 재조사를 요구했고, 취임 직후 키코 문제를 원점에서 재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금감원은 분쟁조정위원회를 거쳐 6개 은행을 상대로 키코 피해기업 4곳에 255억원(피해액의 15~41%)을 배상하라고 권고했고, 최근 우리은행은 이를 받아들여 피해기업 배상에 나서기로 했다.
윤 원장의 키코 사태에 대한 인식은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서도 이어졌다. 윤 원장은 “(금융당국이) 키코를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고 넘어 간 것이 DLF 사태의 원인”이라고 짚기도 했다. 파생금융상품 기획 및 판매 과정에서 은행들의 불완전판매 관행이 키코 사태부터 DLF 사태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에 윤 원장은 직접 상품을 판매한 은행직원뿐 아니라, 은행장에 대한 중징계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본점 차원의 과도한 영업 욕심이 불완전판매로 이어져 소비자 손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대형 은행의 지배구조까지 흔드는 징계가 설마 현실화될까 의심했지만,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중징계를 권고했고 윤 원장은 이를 권고안 그대로 결재했다.
◇“감독실패 반성 없다” 비판도
이런 윤 원장의 행보를 두고 금융권 안팎에선 두가지 시선이 공존한다. 노조와 시민단체 등은 사업자 위주의 보수적인 금융권 문화에서 소비자 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운 점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금융사들은 불만이 적지 않다. 우선 금융 감독의 ‘예측 가능성’을 해쳤다는 비판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키코는 오랜 기간 법의 잣대로 판단이 정리돼 있었는데, 금감원장의 의지로 11년 만에 처음 조사 단계로 돌아가 제로(0) 베이스에서 시작한 셈”이라며 “도대체 금융사가 언제 적 일까지 책임져야 할 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각종 제재와 배상 조치가 잇따르면서, 윤 원장이 금감원 본연의 기능인 ‘감독’보다 사후 채찍에 가까운 ‘검사’ 기능에 더 치중하는 건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윤 원장 취임 후 금감원에서 스스로 감독에 실패한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며 “DLF 사태만 봐도 소비자 보호 책임이 금융사에만 있는 게 아닌데, 너무 금융사만 몰아붙이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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