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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세계 손 씻기 특별 주간

입력
2020.02.04 18:00
수정
2020.02.04 18:0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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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손을 씻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왜 안 씻느냐고 물으면 “내 손에 안 묻었잖아”라고 대답한다. 화장실에서 볼일 본 후 손을 씻는 까닭은 뭐가 묻어서가 아니라 한두 시간에 한 번씩은 손을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을 씻는 것 역시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가족과 이웃 그리고 우리의 반려동물을 위해서다. ©게티이미지뱅크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손을 씻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왜 안 씻느냐고 물으면 “내 손에 안 묻었잖아”라고 대답한다. 화장실에서 볼일 본 후 손을 씻는 까닭은 뭐가 묻어서가 아니라 한두 시간에 한 번씩은 손을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을 씻는 것 역시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가족과 이웃 그리고 우리의 반려동물을 위해서다. ©게티이미지뱅크

호모 사피엔스만 없다면 이 지구가 평화로울 거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없는데 지구, 자연, 우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호모 사피엔스가 있으니 우주는 자기 나이가 138억살이라는 것도 알고 꽃과 동물도 이름을 얻지 않았는가. 호모 사피엔스의 탄생이야말로 우주가 누리는 최고의 복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함은 진화의 결과다. 뇌 회로는 다른 동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그 크기는 절대적으로 크다. 커다란 뇌 덕분에 우리는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고 세탁기도 발명했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는 법. 커다란 뇌는 출산의 고통을 낳았다. 뇌가 커지는 만큼 아기가 통과하는 산모의 회음부가 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기가 통과하는 동안 산모의 회음부는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산모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산욕열(産褥熱)로 죽었다. 출산 직후부터 체온이 오르다가 열흘 안에 사망하는 병이다. 왕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 에드워드 6세의 어머니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산욕열로 죽었다. 산모들을 산욕열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산부인과 의사들의 오랜 소망이었다. 어이 할꼬?

1847년 부다페스트 출신의 독일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는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제안을 했다. “아기를 받기 전에 손을 씻으라”라는 것이다. 의사들이 손을 씻으면 산모가 산욕열로 죽을 일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몇몇 병원은 그의 말을 따랐다.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이 18%에서 1%로 줄었다. 그렇다면 이 처방은 널리 퍼져 나갔을까? 천만에!

대부분의 의사는 따르지 않았다. “정원사가 손에 묻은 흙을 더럽다고 여기지 않듯이, 의사가 손에 묻은 피를 더럽다고 여길 수는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의사들은 뭔가 묻어 있는 손을 근면의 상징으로 삼았다.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여기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기는 하다. 아무튼) 제멜바이스는 병원에서 쫓겨났고 산모들은 여전히 산욕열로 죽어나갔다.

우리는 요즘 산욕열이 생기는 과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상처가 난 회음부에 의사 손에 묻어 있던 세균이 침입하여 감염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요즘 산욕열로 죽는 산모가 거의 없는 까닭은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산모와 아기를 만지기 전에 손을 열심히 씻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 씻기도 기념해야 하지 않을까?

5월 5일, 10월 9일, 12월 25일이 무슨 날인지 다 안다. 우리 풍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2월 14일과 10월 31일마저도 이젠 웬만한 사람이면 그날 벌어지는 온갖 장면을 이해해준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날을 기다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기념일 때문에 괴롭고 서러울 지경인 사람들도 꽤 많다. 이런 날들을 모르고 안 챙기면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길지는 몰라도 우리 생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제 꼭 기억해야 할 날이 있다.

10월 15일이다. 무슨 날일까? 무려 ‘세계 손 씻기의 날(World Handwashing Day)’이다. 이름에 ‘세계’가 붙었다고 해서 유네스코나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날이라고 지레 짐작하지는 마시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정한 날이다. 미국 사람들이야 로컬에 불과한 자기네 야구 경기를 ‘월드 리그’라고 부르는 자들이니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뜻이 가상하여 2008년부터 10월 15일에 전 세계적으로 손 씻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시방은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다. 하지만 매일 2,000명이 넘는 어린이가 감기와 설사 같은 감염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독감 예방주사와 항생제보다 더 간단한 예방법이 있다. 바로 손 씻기다. 지하철 화장실을 수십 년째 이용하고 있지만 최근에야 처음으로 줄을 서서 손을 씻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다들 열심히 손을 씻는 것이다. 다행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손을 씻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왜 안 씻느냐고 물으면 “내 손에 안 묻었잖아”라고 대답한다. 화장실에서 볼일 본 후 손을 씻는 까닭은 뭐가 묻어서가 아니라 한두 시간에 한 번씩은 손을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손을 씻겠다고 일하다가 화장실에 갈 수 없으니, 이왕 화장실에 간 김에 손을 씻자는 거다. 손을 씻을 때는 30초는 씻어야 한다. 손을 씻으면서 ‘생일 축하노래’ 또는 동요 ‘비행기’를 두 번 부르면 된다.

의사들이 자신만을 위해 손을 씻는 게 아니다. 우리가 손을 씻는 것 역시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가족과 이웃 그리고 우리의 반려동물을 위해서다. 우리는 손을 씻어야 한다. 왜? 호모 사피엔스니까. 큰 뇌와 깨끗한 손은 동전의 양면이다. 무릇 만물의 영장이라면 손을 씻자. 항상 기뻐하면서, 쉬지 말고, 범사에 기도하듯이 손을 씻자. 방역 당국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이때 우리 보통 시민이 할 일은 하나다. 손을 씻자. 이번 주를 ‘세계 손 씻기 특별 주간’으로 정하면 어떨까?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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