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소독 의뢰 10배 이상 늘어”
“국내 확진자가 나온 뒤로는 방역 작업이 10배 이상 늘었어요. 특히 유치원이나 학원은 하루 3건 이상 소독 의뢰가 들어옵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만난 한 사설 방역ㆍ청소업체 사장 정현우(35)씨는 최근 밀려든 방역 요청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말했다. 2011년 1인 창업으로 시작해 방역 및 소독 업무를 해온 지 10년째지만 올해만큼 일이 몰린 적이 없었다.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최근 학원가와 유치원 등을 중심으로 사설 방역업체를 통한 방역 광풍이 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국내 3번 확진자가 강남과 경기 일산 곳곳을 돌아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 사이에 공포감이 조성된 탓이다. 정부 당국의 초동 대응 실패에 대한 불신까지 겹치면서 사설 방역업체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리는 것이다.
특히 학원이 집중된 강남과 목동을 비롯해 어린이집과 키즈 카페가 많은 경기 수원, 성남, 평택 등 거주 밀집 지역의 방역업체들은 하루 문의 전화가 평소보다 최소 5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가 3일 작업을 벌인 대치동 학원가의 유아 전문 영어학원의 경우 “예방 차원에서 소독을 의뢰했다”고 했다. 학원 관계자는 “해충 방역은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하고 있지만 살균 소독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씨가 방호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채 학원에 도착한 시각은 학생들이 모두 떠난 오후 5시. 방역에 필요한 도구는 소독 약품과 초미립자 소독 연무기, 휴대용 세균 검사기 등. 2개의 소독 연무기 가운데 하나는 대기 중 세균을, 다른 하나는 바닥과 책상 등 표면을 살균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세균 검사기는 방역 전후 세균 번식 정도를 측정하는 데 쓰인다. 소독 약품은 식품 살균에도 사용되는 인체에 무해한 약품으로, 연무기에 넣어 기체 형태로 분사된다. 정씨는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하는 이유는 살균 약품으로 지속적으로 무균 상태가 돼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지, 유해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연무기 2개를 양손에 들고 180평 규모의 학원 구석구석에 소독제를 분사했다. 방역에 소요된 시간은 총 2시간.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문 손잡이나 세면대, 화장실은 집중적으로 약품을 살포했다. 학부모 김모(35)씨는 “아이들은 면역력이 성인보다 떨어져 감염에 취약한데 학원에서 방역을 한다고 하니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확산세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일반 기업들도 사설 방역업체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광진구의 한 해충전문방역업체 관계자는 “학생 밀집 시설뿐 아니라 일반 기업체나 숙박 업소 등으로 방역 작업이 확대되는 수순”이라며 “법정의무소독만 하던 작은 업체도 최근 미세 살균 소독을 요청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사설 방역 업체의 성황은 정부의 방역 실패가 부른 새로운 풍속도다. 이상엽 고려대 안암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에서 놓치는 게 많다 보니 일반 시민들로선 믿을 수가 없어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방역을 맡기는 것”이라며 “강하고 선제적인 대응으로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방역의 실제 효과에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일시적 예방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방역을 했더라도 다음날 접촉자가 해당 장소를 방문하면 효과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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