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은행이 2008년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사태’ 로 손실을 입은 피해기업들에게 12년 만에 배상을 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은행들 가운데 처음으로 금융당국의 분쟁조정 결과를 전격 수용한 것으로 다른 은행들이 어떤 결정을 할 지에 이목이 쏠린다.
우리은행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피해기업 2곳(재영솔루텍, 일성하이스코)에 총 42억원을 배상하기로 결정했다고 3일 밝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사회가 (배임) 논란에도 불구하고 금융소비자의 권익 보호가 중요하다고 보고 배상을 진행하기로 했다”며 “다만 다른 키코 피해 기업과 자율 조정을 하기 위한 은행협의체 참여 여부는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는 지난해 12월 키코 피해 기업 4곳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원으로 가장 많고, 우리은행 42억원, KDB산업은행 28억원, 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이다.
은행들은 분조위의 이 같은 권고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인 10년이 지난 사건에 배상을 할 경우 향후 업무상 배임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또 한 기업이 여러 은행과 동시에 거래를 한 경우도 적지 않아 어느 한 곳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어려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윤석헌 금감원장이 학자 시절부터 피해기업 배상을 주장해온 사안인 만큼 결국 은행들이 권고를 거부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했다.
결국 우리은행이 이날 처음으로 수용 결정을 내렸다. 앞서 하나은행은 지난달 열린 이사회에서 분쟁 조정 결과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향후 자율 조정을 위한 은행 협의체가 구성되면 참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배상액이 가장 큰 신한은행은 4일 열릴 이사회에서 수락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우리은행의 결정을 두고 ‘정무적 판단’이 개입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지난달 30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그룹 회장이 중징계를 받은 직후에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적으로 (배상을) 강제할 수 없고 배임 이슈도 여전한 상황에서 다른 은행들이 우리은행의 결정을 따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하나은행은 이날 이사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에는 분쟁조정안 수락 여부를 결정할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은행들의 수락 여부 통보 시한은 한차례 연장해 이달 7일까지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으로 대거 가입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가 터져 원ㆍ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기업 732곳이 3조3,000억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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