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 폴란드 “이민자도, 유럽연합도 싫다”
좌파정권 부패ㆍ난민 포화 ㆍEU 피로감 속 우파 민족주의 부활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북서쪽으로 400km 떨어진 항구도시 그단스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떠야 하는데도 도심 한복판인 호박 보석박물관 앞에서조차흥겨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곳은 지난해 1월 13일 파벨 아다모비치 그단스크 시장이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장소다.
그단스크는 1980년대 조선소 노동자들이 만든 ‘자유노조 연대’를 통해 폴란드뿐 아니라 동유럽 민주화 확산에 불을 지핀 ‘폴란드 민주화의 성지’로 불린다. ‘민주 폴란드’의 초대 대통령인 레흐 바웬사가 바로 이곳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 출신으로 아다모비치 시장의 정치 성향도 자유노조 연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아다모비치 시장은 반 이민정책을 펴는 집권당인 ‘법과정의당’에 반대하는 여러 정책을 펴왔다. 이민자와 성소수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특히 내전으로 유럽을 유랑하게 된 시리아 난민과 그들의 어린 자녀를 그단스크로 데려오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랬던 아다모비치 시장이 괴한에 찔려 사망하자마자 외신들은 폴란드 민주화가 크게 후퇴할 것이라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범인인 28세 남성 스테판은 아다모비치 시장의 소송 정당인 ‘시면 연단’ 집권기에 억울한 옥살이를 했기 때문이라거나, 심신박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입장이지만 외신과 현지 주민들은 폴란드 사회 전반의 보수화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그단스크에서 만난 시민 미하우는 “시장 피살은 지난 100년 간 그단스크에서 발생한 사건 사고 중 시민들을 가장 놀랍고 슬프게 만든 일이었다”며 “하루 빨리 관련자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신들의 우려대로 아다모비치의 죽음은 폴란드 사회의 급속한 보수화를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그 사건 이후 9개월 뒤 치러진 폴란드 총선에서 집권당이자 보수성향인 법과정의당이 또다시 대승을 거뒀다. 폴란드 내부에서도 집권당이 극우 정파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으나, 법과정의당의 반 이민정책과 사법 언론 기관에 대한 통제는 갈수록 강화되는 분위기다.
냉전시절 동구권의 민주화를 주도했던 폴란드 사회의 급속한 보수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젊은 계층의 변신에서 이유를 찾는다. 외부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일자리를 잠식할 것을 우려한 젊은 계층이 이전 세대와 달리 민주 진영을 지지하는 대신 정치적 무관심에 빠져 우파 민족주의의 부활을 불러왔다는 얘기다. 지난해 10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가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발표 때 “폴란드 민주주의를 위해 올바르게 투표하자”고 말했다가, 집권당 지지세력으지부터 “나라를 분열시킨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물론 폴란드 젊은층의 변심에는 이유가 있는데, 특히 과거 민주진영이 집권했을 때 여러 차례 비리 사건이 벌어진 게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아그니에슈카 스미아타츠 폴란드 브로츠와프 한국학과 교수는 “과거 민주세력이라 자부하는 좌파 진영이 집권했을 때 빈번하게 벌어진 여러 부정부패 사건이 젊은이들이 투표장에 나가지 않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며 “현재 폴란드 정치에서는 좌우 이념의 개념이 모호해 졌지만, 현 집권 세력의 승리에는 젊은이들의 정치 무관심이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 시민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유럽연합(EU) 피로감’도 우파 민족주의 부활에 불을 지피는 불쏘시게 역할을 했다. 특히 EU 회원국별로 일정 난민을 분산해 수용해야 한다는 EU의 ‘난민쿼터제’에 반발이 강하다. 폴란드는 시리아 내전사태가 불거지기 전부터 이웃한 우크라이나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몰려와 내부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또 체첸 사태로 수많은 난민이 이미 폴란드에 유입돼 있어서 시리아 난민까지 추가로 수용 해야 한다는 난민 쿼터제 시행에 수긍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폴란드 기업 컨설팅 업체 타스의 다리우슈 오브로츠키 대표 회계사는 “EU의 경제 지원을 발판으로 경제 발전을 하고 있으면서 난민 문제에 대해서 EU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라며 “다만 아직 서구 유럽에 비해 경제 기초 체력이 강하지 못한 폴란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EU 회원 국 중 상대적으로 빠른 경제 발전을 해온 폴란드의 경제 상황이 최근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폴란드 경제는 유럽연합 기금 등의 지원과 한국과 미국 등 외국 자본의 지속적인 투자로 EU 회원국 평균 대비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EU 탈퇴 등 EU 내 불확실성 증가와 외자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로 성장률이 갈수록 둔화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실제 폴란드 경제 성장률은 2018년 5.15%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부터 완연한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0년 폴란드 경제 성장률을 각각 3.1%와 3.6%로 2018년 대비 2%포인트 가량 낮춰 잡았다. 특히 3%대의 경제성장률도 EU와 외자 투자를 발판으로 한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이 있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질 경제성장률은 이보다 더 낮다는 게 중론이다.
로만 소비에츠키 바르샤바 상대 교수는 “폴란드는 EU 가입 후 일부 동구권 국가를 제외하고는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달성한 국가 중 하나”라며 “다만 외국 자본 유입이 계속될지 장담하기 어려워, 현재의 높은 경제 성장률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전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단스크ㆍ브로츠와프ㆍ바르샤뱌(폴란드)=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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