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혐오 괴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도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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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혐오 괴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도 그렇게 시작됐다

입력
2020.02.0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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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이 방화” “우물에 독 풀어” 헛소문 돌며 조선인 수백~수천명 색출‧살해 

설 연휴를 맞아 일본 오사카의 관광명소 도톤보리는 우한 폐렴 등 전염병 때문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붐볐다. 사진 김경화ㆍ일러스트 김일영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일본에서도 어김없이 유언비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얼마 전 소셜 미디어에서는 “바나나를 먹으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되기 쉽다”, “딸기가 전염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등의 황당한 정보가 회자되었다. 사실이 아니라는 확인 기사가 나온 뒤 거짓 정보는 금새 잠잠해졌지만, 인터넷에는 섬찟한 동영상 ‘짤’을 근거로 들이대는 폐렴 괴담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일본의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미확인 정보가 순식간에 한국의 인터넷으로 공유되고, 한국의 소셜 미디어에서 나도는 괴소문이 몇 시간만에 일본의 온라인 게시판으로 옮겨진다. 전염병보다 몇 배나 더 빨리 국경을 넘어 전해지는 유언비어 덕분에 가뜩이나 불안한 마음이 더욱 혼란스럽다. 문제는 이런 헛소문이 때로는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비화한다는 점이다.

괴담에서 시작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1923년 9월1일 일본 수도권을 덮친 관동대지진은, 근대 도시가 대형 재해에 얼마나 취약한 지 생생하게 입증한 대재앙이었다. 규모 8이 넘는 큰 지진, 그리고 곧바로 발생한 화재로 사망자가 10만명이 넘었고, 도쿄의 가옥 중 60%가 불에 탔다. 당시에는 TV나 라디오가 존재하지 않았고, 불바다가 된 시가지에서 신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지진 피해의 전모를 파악하기는커녕, 극심한 혼란 속에서 여진, 화마와 투쟁해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가 극에 달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진이 발생한 날 밤부터 “조선인들이 방화를 한다”는 헛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 수백명이 집단으로 공격에 나섰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심각해졌다.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에 사로잡힌 일본 사람들은 스스로 조직을 꾸려 조선인 색출에 나섰고, 실제로 이 자경단이 수많은 조선인, 중국인 혹은 조선인으로 오인된 일본인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정확한 수치는 확인되지 않지만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의 조선인이 희생되었다.

일본 제국주의 정부는 조선인에 대한 헛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적극적 진화에 나서지 않았다. 당시의 유일한 정보원이던 신문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조선인이 집단으로 폭동을 일으킨다는 헛소문을 줄곧 기사화해 불안감에 오히려 불을 지폈다. 지진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공포에 굴복해 인간의 잔인함을 무기력하게 드러낸 군중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식민지 시대에 자의 혹은 타의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은 평소에도 비하와 차별을 감내하며 생활했다. 당시 일본 사회에 만연하던 소수자 혐오의 대상이었다. 이런 부정적인 정서가 실체도 없는 헛소문과 결합해, 잔인한 학살 행위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이 끔찍한 사건은 처음에는 회자조차 되지 않았지만, 점차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일본 시민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언비어 때문에 경도되어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잔인한 학살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런 불행한 역사를 또다시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한신대지진과 ‘FM요보세요’

1995년 1월 한신대지진이 고베를 직격했을 때, 일본의 시민 운동가들은 부랴부랴 비영리단체를 꾸리고 “FM 요보세요” (우리말 ‘여보세요’에서 따온 제목인데 ‘여’와 ‘요’를 같은 음으로 표기하는 일본어의 특성 때문에 ‘요보세요’가 되어버렸다) 라는 타이틀의 라디오 방송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송출하기 시작했다. 지진 피해를 입은 재일 동포들에게는 신속하게 재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일본인들에게는 재일 동포 역시 지진 피해자이자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미약 주파수대를 이용하므로 공식 허가를 얻을 필요가 없는, 일본에서는 ‘미니FM’ 이라고 불리우는 지역 라디오 채널이었지만, 지진이 발생한 지 단 두 주가 지난 시점, 피해의 전체적인 규모도 채 파악되지 않던 재해 초기에 송출을 시작한 것이니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지진으로 촉발된 불안감이 고베에 사는 재일 동포에 대한 해코지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과 결연한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단체를 설립한 운동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신문 기자로 일했던 그는 고베 출신도 아니고, 재일 동포와 특별한 인연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마침 회사를 그만두고 앞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지진이 났고, 그 길로 고베로 달려왔다”고 멋쩍게 총각 시절을 회상했다. “헛소문에는 정확한 정보로 대처한다”는 발상에, 과연 기자 출신이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 비영리단체는 “FM와이와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건강하게 활동 중이다. 다문화, 다언어 공동체를 표방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으로 재편했는데, 한국어뿐 아니라 중국어, 포르투갈어, 따갈로그어, 베트남어, 태국어 등 고베에 사는 소수 외국인의 목소리와 의견을 담은 프로그램을 송출하고 있다. 과거의 비극을 반면교사로 삼은 시민 사회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소문은 왜 생기는 것일까, 공식은 ‘사안의 중요성’ x ‘정보의 불확실성’

지진이나 태풍 등의 재해가 잦은 일본에서는 적지 않은 유언비어가 나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에도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른다”, “연료 공장이 폭발해서 도쿄가 유독 가스로 뒤덮인다”는 등의 소문이 나돌았고, 2016년 큐슈를 흔들어놓은 쿠마모토 지진 직후에는 “동물원에서 사자가 탈출했다”는 괴담도 돌았다.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이후, 유언비어의 발상지이자 가장 많이 유포되는 곳은 누구나 짐작하듯 소셜 미디어이다. 거짓 정보가 나돌기 시작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소셜 미디어를 신뢰해서는 안 된다”, “헛소문의 무책임한 유포에 대한 규제를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등의 말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조치들이 유언비어에 대한 적절한 대처 방법일까.

미국의 심리학자 올포트와 포스트만의 연구에 따르면 소문의 유포량은 ‘사안의 중요성’과 ‘정보의 불확실성’이라는 두 요인에 비례해서 커진다.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주제일수록, 관련한 정보가 애매모호할 수록, 소문이 생겨나기 쉽고 퍼지는 속도도 빠르다는 것이다.

이 공식에 대입하자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유언비어가 나도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 누구도 전염병에 걸릴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사안의 중요성), 바이러스의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고 감염 경로도 확실히 알 수는 없다(정보의 불확실성). 헛소문이 생기고 퍼지기에는 최적의 조건인 것이다.

한편, 헛소문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힌트도 여기에 있다. 우리 모두 신종 전염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만큼 ‘사안의 중요성’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최대한 ‘정보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것은 해 볼 만하다. 가능한 모든 정보를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헛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있다. 괴담 유포자 한두 명을 엄벌에 처할 수는 있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곧 다른 괴담이 또 생겨날 것이다. 가짜 뉴스에 대한 엄벌보다 정보의 투명성 확보가 훨씬 더 효과적인 대처 방법인 것이다.

신종 전염병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전 세계에서 아시아 인종에 대한 차별 행위가 보고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중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과장된 혐오 정서가 표출된다는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 사회는 괴담이 부추긴 혐오와 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 뼈아프게 기억하는 주체가 아닌가. 전염병의 공포와 싸우는 것은 모두에게 힘든 경험이다. 부정적 마음이 자라나는 것도 인지상정일 지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만큼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해코지에 여지를 주는 유언비어를 뿌리치는 용기를 가졌으면 싶다.

김경화ㆍ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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