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강도 높은 대(對)중국 봉쇄 조치까지 취하는 가운데 중국 의존도가 높은 일부 동남아 국가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강력한 대응에 나섰다가 중국의 반감을 사게 될 경우 향후 관광산업과 중국 주도 대규모 국가 기간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일 동남아 국가들의 현지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대표적 친중(親中) 국가이면서 확진자 1명이 확인된 캄보디아는 중국 내 자국민 귀환 요청 요구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훈센 총리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중국행 비행로를 폐쇄하고 중국 내 우리 국민을 대피시키는 조치는 캄보디아의 경제를 죽이고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내 자국 학생과 외교관의 출국을 요구하지 않은 사실을 언급한 뒤 “어떤 상황에서도 (중국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그들을 중국에 두겠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관광수입이 절대적인 태국에서도 ‘눈치보기’ 현상이 벌어졌다. 중국을 제외하면 확진자가 19명으로 가장 많은 태국은 그간 보건당국이 중국 여행객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 등의 조치를 수립하는 등 외견상 강력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피하트 라차키트프라칸 관광체육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보건부의 추가 조치에 반대한다”면서 부처 간 불협화음을 드러냈다.
일부 동남아 국가들의 이 같은 태도는 자국의 관광산업이 받을 심대한 타격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캄보디아는 인접한 태국이 카지노 사업을 금지하자 이를 역이용해 중국인 카지노 관광객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 태국은 올해 중국 춘제(설) 연휴 가장 많은 중국인이 방문한 해외여행지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태국에서 카지노 관광이 힘들어진 중국인 상당수가 태국에서 캄보디아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남아 국가들 입장에선 자국 내 기간사업 추진에 투입된 막대한 ‘차이나 머니’의 위력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미얀마ㆍ라오스ㆍ태국 등 메콩강 권역국가들을 일대일로(육상ㆍ해상 실크로드) 전략의 거점 지역으로 삼고 도로ㆍ댐 등 인프라 구축사업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사회간접자본(SOC)이 절대 부족한 이들 국가들로선 중국의 심기를 건드려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나마 베트남과 미얀마는 강경책을 이어가며 자국민 보호에 집중하고 있다. 7명의 확진자가 있는 베트남은 전날 중국권 항공편 노선 운행을 모두 중단시켰다. 확진자가 없는 미얀마는 같은 날 항저우에서 양곤으로 향하던 항공편에 중국인 의심환자가 탑승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자 자국민 2명만 입국시키고 비행기를 중국으로 돌려보냈다. 베트남은 동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미얀마는 자국 삶의 근간인 메콩강 상류에 중국이 밋손댐 건설을 추진한 것 때문에 각각 반중 정서가 상대적으로 강하다.
이날 필리핀에선 신종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처음 발생했다. 그는 필리핀 내 최초 확진자였던 중국인 여성의 남편으로, 이번 사례는 중국 이외 지역 확진자 중 첫 사망으로 기록됐다. 이 밖에 18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싱가포르는 전날부터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확진자가 없는 것으로 파악 중인 인도네시아는 이날 오전 우한 내 자국민을 전세기를 이용해 귀국시켰다. 이들은 바탐 항나딤 공항에 내려 수용 예정지인 나투나로 이동할 예정이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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