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아산 주민들, 수용 반대 철회… 응원 현수막·SNS 캠페인
“우리국민 어찌 외면하나… 님비 아니라 우왕좌왕 정부에 화난 것”
“교민들을 못 받겠다는 농성에 참여하면서 한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타국에서 공포에 떨다 돌아온 우리 국민을 어떻게 외면합니까.”
31일 오후 충북 진천군 덕산읍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도로변 먼 발치서 중국 우한 교민들을 태운 버스들이 도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주민 이봉주(60)씨가 한 말이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애초부터 진천 사람들은 교민을 반대한 게 아니라 일관성 없게 밀어붙인 정부에 화가 났던 것”이라며 “모두 이 곳에서 편안히 안정을 취하고 건강하게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로 건너편에서는 진천읍에 사는 주민 3명이 플래카드를 걸고 있었다. 플래카드에는 ‘우한 형제님들, ‘생거진천(生居鎭川ㆍ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기 좋다는 뜻)에서 편히 쉬어가십시오’란 글귀가 적혔다.
이번에도 시민의 힘이 사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한 교민 임시
생활 시설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오락가락하며 혼란을 키웠지만, 시민들은
성숙한 자제력으로 스스로 혼란을 잠재웠다.
불과 이틀 전인 29일까지만 해도 이번 사태는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임시 생활 시설 장소로 결정된 아산시와 진천 주민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해당 시설 출입구를 틀어막고 밤샘농성에 들어갔다. 여기에 일부 정치인들이 ‘지역 홀대론’ ‘정치적 결정’ 등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주민 반발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정부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집단행동 중에도 아픈 이웃을 보듬는 포용심도 잊지 않았다. 두 지역 주민들은 마라톤 회의 끝에 “우리는 모두 같은 국민”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이날 오전 전격적으로 수용 반대 입장을 철회했다. 그리고 우한 교민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기 전 수용반대 현수막과 농성 천막을 자진 철거했다. 진천 주민들은 이날 현장 정리에 동원된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에게 커피, 컵라면을 제공하기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We Are Asan(위 아 아산)’이란 글들이 쏟아졌다. 아산 시민들이 ‘우한 교민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다. 아산에서 편히 쉬었다 가라’는 메시지로 교민들을 응원하는 운동이었다.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인근에는 ‘힘내세요, 아산시민은 여러분을 응원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경찰인재개발원 인근 마을에 사는 김재호 초사2통장은 “오신 김에 잘 지내고 안전하게 잘 돌아가길 빈다. 다만 사고가 생길 수 있으니 보건 당국에선 심혈을 기울여 조치해 달라”고 했다. 진천의 윤재선 공동대책위원장은 “교민 중에 학생들이 많다고 들었다. 당국은 특히 학생들의 안전에 신경 써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자체의 역할도 컸다.
주민 반발이 한창일 때 아산시가 선제적으로 정부 방침 수용을 발표하고 진천군도 동조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양 시군은 정부의 적극적인 주민 설득 작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교민 도착 직후인 이날 오후 1시쯤 경찰인재개발원 앞에 현장 집무실과 숙소를 마련했다. 그는 “교민들이 돌아가는 날까지 집무는 물론 일상생활을 여기서 하겠다”며 “아산 시민들의 걱정과 염려는 지역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게 아니니 공감해 달라”고 호소했다.
오세현 아산시장도 경찰인재개발원 앞에 임시 집무실과 방역대책본부를 차리고 철저한 방역을 약속했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우한 교민이 도착하기 직전 발표한 담화문에서 “진천 군민들도 교민들이 따뜻한 보살핌과 방역 당국의 보호 속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것"이라고 지원을 약속했다.
이번 사태 수습 과정에 대해 원구환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공동체 의식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줬다"며 "교민 응원 온라인 운동 등을 보면서 그 만큼 시민의식이 높아졌다는 점도 확인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 ‘위 아 아산’ 캠페인은 시민 의식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증거”라며 “구분 짓기가 아닌, 연대와 포용으로 감염병에 대한 공포를 극복해 나가자는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우한 교민 임시 생활 시설 지정에 대한 갈등이 지역 이기주의로만 비친 것도 아산과 진천 주민이 보여준 성숙한 시민 의식의 불씨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천안 등에서 임시 생활 시설 선정을 둘러싸고 갈등이 폭발한 건 님비 현상이 아닌 정부의 일방적이고 투명하지 못했던 정보 전달 과정 때문”이라며 “일부 주민의 반발을 혐오로 몰아세우는 것을 두고 대부분의 주민이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는 반작용”이라고 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 ‘신종 코로나’ 문제로 한국과 해외에서 벌어지는 반 혐오 움직임은 21세기 열린 시민사회의 인종 및 문화적 차별에 경종을 울리는 인간애 회복 운동”이라고 진단했다.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아산=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진천=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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