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 91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을 받은 ‘그린 북’은 여러 논란에 시달렸다. 유명 흑인 피아니스트와 이탈리아계 운전기사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나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백인의 시선으로 접근한 영화라는 지적이 있었고, 원작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 비하 트위터 글을 리트윗했던 일이 밝혀져 도마에 올랐다. 인종 화합을 백인 입맛에 맞춰 위선적으로 다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 지난해 이맘때쯤 미국 연예전문 매체 할리우드리포터에 ‘그린 북’을 옹호하는 칼럼이 실렸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앞두고 나온 저명 흑인 칼럼니스트인 카림 압둘 자바의 글이라 시상에 영향을 줄 만했다. 1970~80년대 미국 프로농구(NBA) 코트를 호령했던 그는 대중문화와 인종, 종교에 대한 글을 시사주간지 타임과 할리우드리포터 등에 정기 기고하고 있다. 전매특허 같은 ‘스카이 훅슛’을 던지던 손이 컴퓨터 자판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자바는 2016년 필라델피아 자유 메달을 받았다.
□ 자바처럼 은퇴 후 활동이 눈에 띄던 농구 선수가 코비 브라이언트다. 그는 2017년 자신이 제작하고 내레이션까지 맡은 단편 애니메이션 ‘디어 바스켓볼’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디어 바스켓볼’은 농구를 향한 브라이언트의 열정이 담겨 있다. 6세 때부터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경기를 챙겨 보고 양말을 말아 만든 공으로 침대에서 슈팅 연습을 했던 브라이언트의 농구 사랑이 연필 스케치처럼 묘사돼 있어 1월 26일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숨진 브라이언트의 삶을 새삼 돌아보게 한다.
□ ’디어 바스켓볼’은 브라이언트가 은퇴 발표 당시 한 매체에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브라이언트 내면의 목소리를 담은 5분가량의 짧은 영상이지만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고, 아카데미상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상까지 받았다. 브라이언트는 운동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으로선 최초의 아카데미상 수상자가 됐고, 흑인으로선 이 부문 첫 수상을 하게 됐다. 애니메이션은 ‘사랑합니다, 언제나, 코비’라는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2월 9일 열릴 제 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브라이언트의 삶을 기리는 행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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