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1월 31일 오후 11시(현지시간)를 기준으로 유럽연합(EU)에서 정식으로 탈퇴한다. 중부유럽표준시 기준으로는 2월 1일 0시, 한국시간 기준으로는 2월 1일 오전 8시에 해당한다. 지난 2016년 6월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한 지 약 3년 7개월만에 ‘브렉시트’가 이행되는 셈이다. 하지만 당장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이행기 끝나도 한-영 FTA 발효”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발행한 참고자료를 통해 31일이 지나도 당분간 한국과 영국의 통상 관계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브렉시트 직후에도 영국은 올해 말까지 EU와 무역 등 미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는 이행기(Transition Period)를 설정해 두고 있다.
이행기 안에 영국은 EU 단일시장 및 관세동맹에 사실상 잔류하게 된다. 형식적으로 브렉시트를 결행했지만 국제협정 상으로는 EU 회원국 수준의 지위를 유지하는 셈이다. 유럽 역내 이동의 자유도 그대로 유지된다. 한국과 영국의 교역 관계도 EU와 맺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그대로 적용된다.
이행기가 종료되면 한-EU FTA는 한-영 FTA로 교체된다. 한국은 영국과 지난해 8월 한-영 FTA를 체결해 이행기가 종료되는 2021년 1월 1일을 기해 자동 발효되도록 준비했다. 산업부는 “한-영 FTA는 기본적으로 한-EU FTA 수준으로 체결되어 있어 우리 기업이 영국과 무역 거래 시 모든 공산품의 무관세 수출 등 기존의 특혜관세 혜택은 동일하게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영국이 올해 안에 EU와 새로운 관계 설정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이행기 연장에 합의한다면 계속해서 한-EU FTA가 적용되고, 한-영 FTA의 발효는 연장된 이행기 이후로 미뤄진다.
◇‘노 딜’ 위험성도 매우 낮아졌다
국내외에서는 브렉시트가 경제에 미칠 간접적인 영향도 축소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이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 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이 일단 영국과 EU가 탈퇴 직후 이행기 설정에 합의하면서 비교적 낮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조동희 세계지역연구센터 선진경제실 유럽팀장과 윤형준 연구원은 이날 발행한 ‘브렉시트 개시: 의미와 쟁점’에서 “합의에 따른 브렉시트 및 이행기가 개시됨에 따라서 브렉시트 국면이 야기한 경제적 불확실성이 대폭 완화됐다”며 “실질적인 변화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고 예상 밖의 급격한 변화 발생 가능성도 낮다”고 밝혔다.
앞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세계 경기 흐름이 낙관적으로 전환됐다고 보면서 그 근거 중 하나로 ‘노 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을 들었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브렉시트 문제는 지속적으로 불확실성을 남기고 있지만 그 불확실성의 강도에는 부침이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며 “현재는 브렉시트 외 다른 큰 불확실성 요소가 많기 때문에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커지진 않았다”고 밝혔다.
◇이행기 협상 따라 불확실성 재부각될 수도
하지만 브렉시트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장 영국이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경기 둔화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30일 통화정책 결정 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영란은행이 올해 브렉시트로 인한 불확실성과 생산성 하락 등의 여파로 연간 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카니 총재는 “이는 노 딜 브렉시트가 아니라 이행기가 2020년 즉각 종료되고 영국이 EU와 깊은 수준의 자유무역 관계를 설정한다는 전제 하에 내놓은 예측”이라고 설명했다.
‘노 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앞으로 EU와 영국은 이행기 안에 새로운 관계 설정에 관한 협상을 마무리할 필요가 있는데 이 협상이 난항을 빚게 되면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노 딜’의 불확실성이 다시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국과 EU 모두 자국 기업에 올해 말 이후 ‘새로운 관계’에 대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물론 협상이 완료되지 않으면 이행기를 연장할 수 있지만,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행기 연장을 강경하게 거부하는 입장이라 포괄적인 협상을 완료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EU도 우선협상 분야를 설정해 낮은 수준에서 분야별로 합의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EU 내에서도 27개국이 각자 원하는 우선협상 분야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협상이 수월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 기업 일부도 ‘노 딜 브렉시트’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한국과 영국 양자간 교역은 한-영FTA에 따라 큰 변화가 없지만 한국에서 영국을 거쳐 EU와 교역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인증을 받아 EU에 제품을 수출하던 기업은 EU의 추가 승인을 받을 필요가 생길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말 발행한 ‘통상이슈브리프’는 EU와 영국 간 무역협정이 완료되지 않고 이행기가 종료돼 노 딜 브렉시트가 발생할 경우 관세와 통관, 인증제도 변화에 따른 기업의 영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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