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자년을 맞아서인지 연초부터 쥐에 대한 글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사람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쥐는 기피 대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인간의 유전 정보와 90% 이상 일치한다는 점에서 과학계에서는 소중하게 다뤄지는 실험동물이다. 그동안 인간의 수많은 난치병 진단법과 치료책 발굴에 실험쥐가 요긴하게 활용돼 왔다. 현대의 생물학과 의학 분야에서 실험쥐가 없는 연구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막상 그 숫자를 접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국내 362개 기관에서 사용된 실험동물이 372만 마리를 넘었다. 전년에 비해 21% 정도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쥐(설치류)가 약 84%를 차지한다. 하루 평균으로 따지면 8,500마리 이상의 쥐에게 실험이 행해지고 있다.
동물실험이 과연 이만큼 필요한가에 대한 지적이 연구 현장에서도 나온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의아했던 표현은 ‘재현성 위기’였다. 가령 쥐에 특정 약물을 투여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논문이 발표됐을 때, 다른 연구자에 의해 동일한 결과가 잘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선행 연구가 부정확했다면, 또는 이를 모르고 후속 연구자가 그 연장선에서 새로운 연구를 했다면 불필요한 동물실험이 행해진 셈이다.
산업계에서는 좀 더 현실적으로 위기를 바라보고 있다. 동물실험에서와 달리 인간에게 적용할 만한 결과는 드물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뇌졸중 치료의 효과를 보고한 5,700여 편의 동물실험 논문이 발표됐지만 인간을 위한 치료제의 등장은 아직 요원하다는 보고가 있었다. 저자가 극단적으로 “동물에서는 모두 작용하지만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작용하지 않는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미국의 경우 임상연구에서 재현되지 않는 동물실험 논문의 비율이 50% 이상에 달해 수백억 달러의 손실을 낳았다는 보고도 있었다.
물론 성공적인 실험 결과가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현재 동물 실험의 규모와 효과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바로 연구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편에서는 동물실험을 대체할 연구 방법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요즘 언론 매체에서도 곧잘 등장하는 오가노이드, 즉 줄기세포를 모아 만든 ‘미니장기’의 이용이 한 가지 사례이다. 하지만 현재의 실험동물 숫자를 단기간에 대체할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외국 과학계에서는 생각보다 단순하면서도 좀 더 현실적인 해결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논문을 작성할 때 전체 실험과정에서 동물의 숫자를 얼마나 줄이려고 노력했는지 꼼꼼하게 서술하자는 것이다. 세계 과학계의 보편적인 보고 형식인 제목, 요약문, 서론, 재료와 방법, 결과, 논의 등을 최소 20개 항목으로 세분화해 실험동물의 상태와 연구 결과를 상세하게 서술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연구 결과가 실제 인간에게 적용될 가능성도 설명해야 한다. 그동안의 논문을 보니 심지어 실험쥐의 성별이나 숫자가 제대로 제시되지 않는 등 엉성한 보고가 적지 않았다는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방책이다.
보고 양식의 전환은 세계 학술지에서 점차 보편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추세이다. 대표적으로 2010년 영국에서 제시된 논문투고 지침(ARRIVE 가이드라인)은 현재까지 1,000여종 이상의 학술지에서 권고되고 있다고 한다.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려면 재현성을 높여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줄이자는 취지에서다.
최근 국내에서는 바이오 분야에 대한 투자가 강조되고 있고 막대한 연구ㆍ개발 예산이 투여되는 대형 프로젝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논문 편수도 중요하지만, 동물실험의 규모와 효과를 고려한 보고 양식의 전환이 정부 차원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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