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노포기행] <31> 경기 의정부 ‘연지곤지·배다니’ 
50년 넘게 한복을 지어온 김혜경씨가 펼쳐 놓은 옷감을 재단하고 있다. 1967년 바느질을 처음 시작한 그의 손마디는 퇴행성관절염으로 울퉁불퉁하다. 배우한 기자

지난달 30일 찾은 경기 의정부시 태평로 73번길20 제일시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인지 북적거려야 할 전통시장은 인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상인은 물론 시장을 찾은 고객들도 하나같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제일시장 라동(1층) 입구에 들어서자 바깥쪽보다 더욱 썰렁하고 적막감까지 감돌았다. 상인들도 손님 기다리기를 포기했는지, 저마다 각자의 점포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거나 TV만 보고 있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자 ‘드르륵, 드르륵’ 하는 기계음이 들렸다. 적막함을 깨는 소리는 50년 넘게 한복을 만들어 온 ‘연지곤지·배다니’ 점포 김혜경(72)씨의 재봉틀 소리였다. 김씨는 한 쪽 구석에 놓은 재봉틀에서 한복을 만들고 있었다.

20㎡ 남짓한 점포에는 김씨의 50년 노하우가 집약돼 있다. 예쁘게 수놓인 매화꽃 담긴 치마에서부터 옛 전통과 사뭇 다른 주름 등으로 포인트를 준 소매의 저고리까지 형형색색의 한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반대편에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고 단아한풍의 한복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의 50년 노하우는 수없는 가위질과 바느질로 퇴행성관절염을 앓는 그의 손에서도 느껴졌다.

◇50년 외길 인생, 바느질

그의 바느질 외길인생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당시 경제적 상황에서 옷을 사 입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일. 자연히 원단을 사다 직접 옷을 만들어 입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김씨의 어머니는 집에서 아버지와 아이들의 한복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늘 봐오던 어머니의 바느질…. 자신도 바느질을 배워보고 싶다는 말에 부모님은 조심스레 승낙했다고 한다. 마을에 있는 한복집 취업에 성공한 그는 어깨너머로 배운 어머니의 솜씨 덕에 궂은일부터 하는 단계를 벗어나 옷감을 만지는 일부터 바로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말이 취업이지 그때는 쌀 3말, 김치 등을 오히려 가져다 줘야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며 “나를 포함해 3명이 있었는데 그나마 나는 바느질을 몇 번 해 봐서 허드렛일은 많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어머니의 솜씨가 정말 좋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고 했다.

취업이라고 일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본인이 어깨너머로 보고 직접 만들어 봐야 했다고 한다. 그는 점포 주인의 행동 하나하나 눈여겨보면서 머릿속에 모두 담았다.

그렇게 5년간 배운 그는 1972년 고향인 충남 논산군(현 논산시) 읍내에 ‘성원한복’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김씨는 “당시만 해도 한복을 입는 분들이 많았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말 바빴다”며 “내가 만든 한복을 내가 직접 판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의정부로 상경, ‘연지곤지’의 탄생

하지만 고향에서의 한복 집 운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년 뒤인 1975년 운수업에 종사하던 남편이 경기 의정부로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복집도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올라온 터에 의정부에서 점포를 낼 형편은 되지 못했다. 바느질을 천직으로 알았기에 대신 한복을 만들어 한복집에 납품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지금의 의정부 1동 지역에 ‘충남한복’이란 상호로 한복집을 다시 열었다. 그때가 1985년이었다. 10년 간 자신이 만든 한복이 남의 상호로 판매되는 것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상호를 바꾼 이유는 “고향에서 접은 지 10년이 된데다 당시에는 한복을 입는 분들이 많아 상호를 변경해도 장사가 잘될 때였다”며 “아무래도 고향이 그리우니까 ‘충남’을 넣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 사용하는 상호인 ‘연지곤지’는 1987년 말 가족회의를 거쳐 이름을 새롭게 지었다고 한다. 이제 지역의 색을 빼고, 그냥 한복과 잘 어울리는 상호를 쓰자는 게 가족들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연지곤지’라는 이름으로 한복집을 운영해 왔다.

10년 전 당시 ‘연지곤지ㆍ배다니’를 현재의 경기 의정부시 제일시장으로 옮기면서 김혜경씨(오른쪽)는 며느리 김보라씨에게 ‘연지곤지’를 물려주고, ‘배다니’만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이 전통한복보다 저고리 길이가 가슴 아래까지 길게 내려온 요즘 한복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한복은 치마부터

한복은 치마부터 만든 후 저고리를 만든다고 한다. 물론 순서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50년 노하우 김씨의 방식이다. 일정한 크기의 6개의 폭을 안감과 겉감 등 모두 12개를 만들어 연결한다. 그 위에 치마를 묶는 곳인 ‘말기’를 붙이고, 끈을 달면 된다.

반면 저고리는 절차가 복잡하다. 원단을 체형에 맞게 앞과 뒤쪽 판을 만든다. 이후 소매를 자르고 남은 원단은 깃과 섶을 재단한다. 우선 뒤쪽 가운데 위에서 아래로 이어진 선을 지칭하는 등솔을 잡는다. 앞판과 뒷판을 연결하는 ‘어깨’, 안감과 겉감을 붙이는 ‘도련’ 후 몸판과 팔을 붙이는 ‘진동’ 작업을 한다. 이어 섶을 붙이고, 저고리를 묶어주는 고름을 단 뒤 소매 끝동을 마치면 하나의 저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김씨는 이를 모두 혼자 한다. 24시간 꼬박 투자해야 한 벌 정도를 만든다. 주문제작은 보름 정도 소요된다.

◇한복도 유행을 탄다

김씨는 대뜸 “한복도 유행을 탄다”고 했다. 일반 옷처럼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색깔만 바뀔 뿐 실제 유행을 탈까 싶었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퓨전 한복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었다. 김씨는 “한복을 입으면 불편하다는 분들이 많다”며 “그래서 요즘 한복은 전통 한복과 큰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그가 한복 저고리를 가리키며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는데 정말 과거 한복과 많이 달랐다. 우선 저고리의 길이가 여성의 가슴 중간쯤에 걸쳐지던 과거와 달리 가슴을 덮을 정도로 조금 길어졌다.

저고리를 묶는 고름도 짧아지고 폭도 줄었다. 전통한복의 고름의 길이는 보통 120~140cm 정도 되며 폭은 7.5cm가 보통이다. 지금은 가장 긴 게 100cm 정도고 80~90cm가 평균인데 최근 1~2년 사이 50cm까지 짧아졌다고 한다. 폭도 전통의 절반 수준인 3.5~4.5cm정도에 불과하다.

김씨는 “한복이 유행에 굉장히 민감해 조금씩 변형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퓨전 한복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경복궁 등 고궁 인근에서 대여하는 퓨전 한복은 일종의 서양식 드레스를 연상케 하기 때문에 전통한복과는 완전히 다른 옷으로 봐달라고 했다.

그는 “우리 전통한복은 말 그대로 멋스러움, 고급스러움이 있다”며 “또한 유행을 타는 우리 한복도 전통한복에 비하면 조금 다르지만 고유의 색과 멋은 그대로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수작업을 고집하는 김혜경씨가 재봉틀 앞에 앉아 있다. 배우한 기자

◇며느리의 대물림, 상호 분리해 각자 운영

김씨의 점포는 10년 전 지금의 장소인 의정부 제일시장으로 옮기게 됐다. 그가 의정부에 처음 올라와 10년 간 납품했던 업체 ‘배다니’가 문을 닫으면서 그때 점포와 상호를 함께 인수한 것이다. 상호명은 기존에 사용하던 ‘연지곤지’와 ‘배다니’를 함께 병행 표기했다고 한다.

수요가 많을 때는 상관없었지만 줄고 있는 상황에서 상호를 바꾸면 단골손님마저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대물림은 정말 생뚱맞게 이뤄졌다고 한다.

시어머니의 상호를 대물림 받은 며느리 김보라(45)씨는 “유치원 교사로 지내다 10년 정도 쉬고 있었는데 어머님께서 갑자기 권유해 나오게 됐다”며 “저는 기술을 배울 수 없어 주문제작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한복 자체가 양장처럼 일정 본을 떠 찍어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100% 주문을 받아 업체에 제작을 의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머님께서는 지금도 한복에 대해 연구하고 배우고 계신다”며 “어머니의 한복사랑, 열정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저도 열심히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물림을 받아 준 며느리가 너무나 고맙지만 자신이 하는 바느질까지 물려줄 생각은 없다고 했다. 자신이 평생을 해온 일이라 당연히 물려주고 싶지만 힘들고 고된 일이기에 며느리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유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점포 분리였다. 김씨 본인은 그대로 직접 제작하고, 며느리는 업체에서 샘플을 받아 전시 후 주문제작하는 방식을 택했다. 20년 넘게 가져온 ‘연지곤지’를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수작업으로 제작해 왔던 ‘배다니’를 본인이 쓰기로 했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저희 한복을 입은 분들이 양장처럼 편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며 “과거처럼 거추장스러운 게 아닌 예쁜 우리옷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바라는 게 있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 한복이 미래세대에서도 인기 있는 옷이었으면 한다”며 “명절 때도 한복을 많이 입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의정부=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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