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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신종 코로나’ 봉쇄선의 안과 밖

입력
2020.01.31 18:00
수정
2020.01.31 20:5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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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확산에 타인 배척도 커져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 비화 막아야

공포 자제하고 포용하는 인류애 절실

중국 우한으로 파견되는 신장 의대 의료진 중 한명이 29일 우르무치공항에서 가족과 작별하고 있다.연합뉴스
중국 우한으로 파견되는 신장 의대 의료진 중 한명이 29일 우르무치공항에서 가족과 작별하고 있다.연합뉴스

“우한 짜요(加油ㆍ힘내라)”

서울 잠실이나 수도권 신도시를 연상시키는 고층 아파트 숲에서 울려 퍼지는 이 함성은 봉쇄된 중국 우한 주민들이 서로를 북돋기 위한 외침이었다. 중국 당국의 인터넷 차단을 뚫고 외국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내 눈앞에 전달된 이 동영상은 2010년 봤던 강풀의 웹툰 ‘당신의 모든 순간’의 무대인 서민 아파트를 떠올리게 했고, 속속 전해지는 우한 상황은 김성수 감독의 2013년 개봉 영화 ‘감기’를 소환하고 말았다.

감염병은 오래전부터 문학과 예술의 단골 소재였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데 있어 공동체를 순식간에 죽음의 공간으로 만드는 감염병의 창궐만큼 적절한 소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함돈균은 “인간 공동체를 휩쓰는 감염병은 존재의 이상 징후가 되며, 인간계를 넘어 자연과 우주가 오염되었음을 암시한다”고 분석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감염병의 원인이라고 밝혀진 19세기 이전까지 감염병의 창궐은 왕이나 감염 환자가 지은 죄 때문으로 여겨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부터 온 도시에 전염병이 창궐하자, 왕이 신의 분노를 거둬들이기 위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감염병의 원인이 밝혀진 뒤에도 사람들의 대응은 그리 이성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질병 확산 원인이 신이나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바이러스 확산의 매개체인 타인이라는 점을 알게 되자, 오히려 공포에 대한 대응은 훨씬 비인간적으로 변했다.

인구 1,000만의 도시가 졸지에 봉쇄된 우한이 바로 그런 예다. 우한 주민들에게 정부의 보살핌이 가장 절실한 바로 그 순간, 정부는 그 주민들을 격리하고 배제했다. 외신이 전한 “아내가 열이 나는데, 병원은 출입조차 거부하고 있다”는 우한 주민의 하소연은 지금 그곳의 상황을 요약한다.

방역 전문가들은 “감염병의 첫 번째 희생자는 주로 합리적 의사 결정”이라고 경고한다. 또 감염병은 악의적이고 잘못된 방향의 차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중국 정부의 우한 격리로 바이러스 확산 속도는 늦춰질지 모르지만, 공포와 타인 배척의 확산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 중국 지방 정부들은 우한을 빠져나온 사람들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중국인은 우한 주민을 막고, 이웃 나라는 중국인을 배척하고, 서구인은 동양인을 바이러스 취급한다. 이런 배척은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따돌리고 나서야 끝이 날 것이다.

우리나라 상황도 이 지옥 같은 악순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천신만고 끝에 오늘 귀국한 우한과 인근 지역 거주 한국인들은 고향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개학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중국인 유학생, 설을 쇠고 한국의 일자리로 복귀해야 할 중국인과 조선족 모두 공포가 하루속히 진정되기 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자주 중국인을 접해야 하는 식당, 상점 종사자와 중국 유학생들의 불안을 이기적이라 탓할 수 없다. 또 귀국 교민 임시생활 시설 지역 주민들의 분노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감염자 또는 감염 의심자를 격리하는 것만으로 결코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영화 ‘감기’가 이런 맹점을 조명한다. 이 영화는 초당 3. 4명인 감염 속도, 치사율 100%인 원인불명의 바이러스가 분당에 창궐하는 상황을 담고 있는데, 감염자의 완벽한 격리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염병 전문의사의 딸이 감염되는 상황으로 보여 준다.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주변 확산을 무릅쓰고 딸의 감염을 감추려는 의사를 누가 무책임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영화는 오히려 인간관계 단절의 불가능성 속에서 바이러스 극복의 열쇠를 찾는다. 혹시 이 영화를 보게 될 독자를 위해 결말은 언급하지 않는 게 낫겠지만,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은 병을 극복한 감염자가 만든 항체가 가장 확실하다는 힌트는 남긴다.

감염 공포에서 한발 떨어져 ‘그들이 내 가족이라면’이라고 생각해보자. 이것이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다.

정영오 논설위원https://twitter.com/i/status/1221868357772668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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